매일신문

대구 '지하철 2호선 시대' 개막-(2)안전설비 세계최고 수준

승강장 화재땐 천장에서 '물그물' 쫙 펼쳐져

'더 이상 지하철 불행은 없다!'

개통을 눈앞에 둔 지하철 2호선은 안전이 최우선일 수 밖에 없다. 시민들이 아직도 '지하철' 하면 '사고철'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기억하기도 싫은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방화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그로부터 꼭 2년 8개월. 오는 18일 개통하는 2호선은 과연 얼마나 안전해 졌을까. 하드웨어(안전 설비)에 관한 한 국내에서 2호선 보다 더 안전한 지하철은 없다는 게 대구시지하철건설본부, 대구시지하철 공사의 확신에 가까운 설명이다.

하지만 하드웨어를 다루는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제대로 작동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또 시민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안전한 시설이라도 무용지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 만큼 성숙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2호선 안전 설비는 1호선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본다.

◇전동차

11일 2호선 반월당역. 개통(D-7)에 앞서 대구지하철건설본부 이필우 기전부장, 류경수 기계설비과장, 대구지하철공사 김희성 기획과장과 동행해 2호선 안전 설비들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반월당역에서 문양역 방향 전동차에 올라 차량 안전설비부터 둘러봤다. 류경수 과장은 "1호선은 KS 기준의 연소성 시험만 평가 했지만 2호선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영국(BS) 기준을 적용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방화 참사 땐 불도 불이지만 유독가스로 인한 인명 피해가 훨씬 많았다. BS는 연소가스 유해성 뿐 만 아니라 연기밀도, 화염전파 시험까지 치른다.

객차와 객차는 물론 기관실까지 포함된다. 1호선 방화 참사 땐 정작 불이 난 전동차 보다도 맞은 편 전동차 피해가 훨씬 컸다. 기관사가 불이 난 지도 모르고 운행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2호선에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김희성 과장은 기관실에 들어서자 마자 맨 우측 LCD 모니터를 잘 보라고 했다. 승강장 진입 전 260m 지점에 이르자 모니터가 켜지더니 승강장 상황이 훤히 드러났다. 2호선 김성영(23) 기관사는 "모니터는 출발 후 108m 까지 켜져 있다"며 "위급한 상황 땐 바로 열차 운행을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2호선이 개통하면 기관사실 내부엔 무선 통신기가 새롭게 등장한다. 예전엔 1주파수 1 채널 시스템이라 비상 상황에도 사령실과 기관사만 통화가 가능했지만 2호선은 무전기를 켜는 순간부터 다른 기관사나 승무원 모두와 다자간 통화가 가능하다. 만약 1호선에 이 장치가 있었다면 마주 달려오던 전동차 기관사는 모든 상황을 눈치 채고 열차 운행을 멈췄을 것이다.

◇지하철 역사

성서공단역에 내려 지하 2층 승강장부터 확인했다. 이필우 부장은 "지능형 제연설비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귀뜀했다. 역사 어딘 가에 화재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지능형 제연설비는 급·배기 구조부터 바꾼다.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화재 장소에서 가까운 곳은 공기를 빼고, 먼 곳은 공기를 불어넣는다는 것. 계단 입구 천장에 둘러 놓은 직사각형 모양의 제연 경계벽은 연기확산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맡는다. 건설교통부는 1천㎡ 이상 구역만 설치 기준을 정했지만 대구시는 승강장 모든 계단에 제연 경계벽을 둘렀다.

제연 경계벽 뒷편 천장에는 대구 지하철에서만 볼 수 있는 수막 설비가 눈길을 끌었다. 6개 노즐은 연기와 열을 감지한 바로 그 순간 '물그물'을 펼쳐 열은 150℃에서 50℃, 연기 전파 속도는 3m/s(초속 3m)에서 1m/s로 떨어 뜨린다. 수막설비는 건설교통부 기준의 안전 설비가 아니라 대구시가 다시는 1호선 방화 참사와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체 제작한 최첨단 장비다.

지하 1층에 올라 역무실에 들렀더니 이곳 역시 몰라보게 달라졌다. 예전엔 역무실 모니터에 같은 장소만 고정적으로 프로그래밍했지만 이젠 모든 역내 장소를 컴퓨터에 주입했다. 박헌태 역장은 "조이 스틱으로 돌리기만 하면 바로 장소가 바뀐다"며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녹화로 전환해 선명도도 훨씬 나아졌다"고 전했다.

또 역무실 중앙 컴퓨터 시스템은 역내 CCTV가 스스로 화재를 감지하도록 조정해 불난 곳을 알아서 찾고 자동으로 화면에 띄우게 한다는 것이다.

2호선 역사 안전 설비의 최대 강점은 전원이 끊겨도 계속 작동한다는 것.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모든 안전 설비가 무용 지물로 전락했던 1호선 참사의 전례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터널내에 설치한 비상조명등은 축전지를 내장해 정전때도 점등 가능하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역시 전원 없이도 스스로 움직인다.

◇이제는 소프트웨어

"할 수 있는 건 다했습니다. 안전 시설로만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할 것으로 장담 합니다." 대구시 지하철건설본부 한동수 본부장은 "하드웨어에 관한 한 이제 더 이상 보완할 게 없을 정도"라며 "문제는 소프트웨어"라고 강조했다. 역내 모든 안전 설비는 화재에 강한 것 뿐이지 화재 자체를 막을 수 있는 시설은 아니다라는 것. 누군가 또다시 방화를 일으킨다면 1호선 보다 피해는 훨씬 줄어들지만 피해 자체는 막을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기관사와 역무원, 종합 사령실의 신속한 정보체계가 2호선 안전의 최대 화두로 떠 오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일부 기관사들은 "2호선 기관사 중 절반이 신규인력"이라며 "비상 사태가 발생했을때 얼마나 신속하게 대처할 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젠 기관사, 역무원, 사령실은 물론 승객, 상가를 아우르는 총체적 정보 연결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면서 "지하철 안전 시스템은 설비, 그것을 다루는 사람, 이용하는 시민들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100% 활용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 2호선 안전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시민의식이 필수다.2호선 26개 역에는 승강장마다 모두 8개씩의 비상정지버튼이 있다. 승객들은 추락사고나 비상 사태 때 이 버튼을 누르면 열차 운행을 정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시민 누군가가 일부러 이 장치를 누른다면 어떻게 될까. 대혼란이다. 대구시 지하철건설본부 류경수 과장은 "건설교통부와 대구시가 마지막까지 고심한 부분"이라며 "성숙한 시민의식이 꼭 뒷받침돼야 하는 안전 설비"라고 말했다.

시민의식이 중요한 승강장 안전 설비는 이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역무실, 사령실과 직접 통화가 가능한 비상전화기, 비상 사태 때 앞 길을 비춰 주는 휴대용 조명등, 산소통, 방호복 등 비상 인명구조물 등이 그것이다. 역무실 관계자들은 "장난 전화를 건다거나 비상 용품들을 무심코 역사 밖으로 가져 가 버린다면 시민 전체의 안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거듭 당부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2호선 기관사들은 승강장 진입전 모니터를 통해 다음 승강장을 확인, 위급상황 때 열차 운행을 바로 중단할 수

있고(사진 위) 터널에는 축전지를 내장해 정전 때도 점등 가능한 비상조명등이 설치돼 있다. 김태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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