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잇따른 아양교 투신…'자살 명소'될라

대구의 관문다리의 하나인 대구 동구 불로동 아양교가 투신자살 장소로 이용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들어 아양교에서 투신 자살 시도가 잇따르고 있지만 당국의 대책은 전무한 실정인 것. 전문가들은 자칫 아양교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나 한강 반포대교처럼 상습 자살지역으로 굳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잇따르는 투신

지난달 22일 30대 여성이 아양교에서 금호강으로 뛰어내리는 광경이 목격돼 강모(47) 씨의 신고를 받은 대구동부소방서 119구조대가 즉시 구조작업에 나섰지만 이 여성은 3일 뒤 4㎞나 떨어진 북구 산격 2동 금호 제1교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6월 12일에는 6·25 참전용사 배모(75) 씨가 다리에서 투신, 숨졌다. 한국전 때 스무 살 젊은 나이에 입대했다가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으로 평생을 고통받았던 그는 딸에게는 자신이 항상 끼고 다니던 금반지를, 둘째 아들에겐 자신의 소지품이 든 상자의 열쇠 꾸러미만을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쳤다.

동부소방서 119구조대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0월부터 올 9월까지 금호교, 안심교, 화랑교, 동촌구름다리, 아양교, 공항교 등 동구지역 다리에서의 자살시도는 모두 31건. 이 가운데 25건 이상이 아양교에서 발생했고 투신자가 사망한 6건 모두 아양교 및 인근에서 발견됐다.

◇왜 아양교인가

이처럼 아양교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아양교가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장소로 선택될 만한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개 투신은 충동적이기보다는 자살에 대한 확신이 있거나 정신적 외상이 심각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

사회에 대한 적개심이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경우 주로 공공 장소를 선택하고 개인적 고통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친숙한 장소를 선택한다는 것. 아양교는 교통량과 유동 인구가 많은 데다 각종 조형 시설물로 화려하게 꾸며져 공공장소 이미지를 줄 뿐만 아니라, 도심을 벗어난 추억의 장소로 각인되기 쉽다는 분석이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김희철 정신과전문의는 "자살자들은 자살방법을 모방하려는 심리가 있다"며 "아양교 투신사고가 많이 알려지면서 아양교를 자살장소로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마음과 마음 김성미 원장(정신과)은 "자살충동이 강한 사람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자살장소를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며 "도심외곽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많은 유동인구에 따른 '군중 속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아양교는 특히 젊은 층과 우울증 환자들에게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전무한 대책

투신사고가 잇따르지만 경찰과 관할 행정기관의 대책은 전무하다. 경찰은 아양교 일대 순찰을 강화하지만 자살 시도를 막기엔 역부족. 매 시간마다 아양교를 순찰하고 다리 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돌려 보내지만 시도 자체를 예방하긴 어렵다는 것.

이용재 대구동부경찰서 안전계장은 "근무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외형상으로 투신 여부를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예방보다는 신속한 구조에 더 주안점을 두는 형편이다"고 말했다.

대구시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대구시 도로과 이종원 도로기획계 담당은 "투신방지 시설을 만들려면 교량 설계 단계부터 고려해야 한다"며 "현재로선 시설 공사는 교량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고 보호망 등은 미관상 좋지 않아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부산시는 지난해 광안대교에서 투신 시도가 잇따르자 다리 상하층에 각 12대씩 모두 24대의 CCTV를 설치하고 상황실에서 24시간 감시활동을 벌여 오고 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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