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은 그럴듯한데 진실하지 않은 사람이나 진짜 비슷하게 만들어진 가짜 물건을 '사이비(似而非)'라 한다. 정교한 모조품은 진짜와 구별이 쉽지 않고, 때로는 진짜를 뺨치는 행세까지 한다. 그러나 진짜와 가짜는 만들어진 과정, 그 속에 담긴 정신이 딴판이다. 진짜에는 창조적이며 독창적인 정신이 깃들어 있다. 고통스러운 삶과 그 고뇌가 투영돼 있기도 하다. 반면 가짜는 겉모습만 진짜를 닮게 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도둑질하려 한다.
네덜란드의 미술품 위조꾼 얀센이 "아침에는 샤갈 드로잉 몇 점을, 점심 땐 아펠의 작품 두어 점을, 오후엔 피카소의 그림 몇 점을 그렸다"고 고백해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가 그린 가짜 그림은 화가들마저 자신이 그린 진짜 그림으로 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도 결국은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샤갈의 가짜 그림을 감쪽같이 그렸으나 작가 사인의 철자를 조금 틀리게 썼다가 들켜버렸다.
미술품 '가짜 시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작가치고 위작(僞作) 시비에 휘말리지 않은 경우가 드물 정도다. 고미술품은 50%가 가짜라는 통계가 나온 바 있으며, 예술성과 희귀성 때문에 그림 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작가의 작품을 겨냥한 사기꾼들의 '눈독'과 '돈독'은 잠들 줄 모르는 '극성'이다.
근래에 진위(眞僞) 논란을 빚고 있는 서양화가 이중섭(李仲燮)과 박수근(朴壽根)의 작품들을 둘러싼 말썽이 뜨겁다. 이미 얼마 전, 미술평론가, 화가, 화상, 미술품 감정가 등 미술전문가들이 '가짜'라고 판정한 작품들이 검찰에 넘겨져 최근 역시 위작 판정을 받았다. 이중섭 50주기 기념 미발표작 전시 준비위원회가 소장해온 이중섭 작품 수백 점, 아들이 갖고 있는 작품들이 '위작 조직설', 그 연루 의혹으로 증폭되더니 진품이라는 유족과 위작이라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맞서다 검찰에 넘겨져 내려진 판정이다.
이번 위작 시비는 지난 3월 감정협이 서울 옥션에 나온 이중섭의 작품과 그의 50주기 기념전 준비위 소장 작품들이 위작이라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이중섭의 차남이 감정협에 대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면서 가열됐다. 아무튼, 유족들까지 위작 시비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오로지 창작에 몰두하면서 궁핍하게 살다간 예술가에게 돈 문제로 가족들에게까지 누를 끼쳐서야 되겠는가.
이중섭과 박수근의 불우했던 생애를 떠올리면 더욱 기가 차는 일이다. 가난에 찌들었던 '빼어난 화가'들이 돈 때문에 사후에도 수모를 당하는 꼴이지 않은가. 우리나라 화가 가운데 타계 이후 성가(聲價)가 치솟고, 그림 값이 엄청나게 오른 대표적인 경우가 이중섭과 박수근이다. 더구나 이들에게 공통되는 특징은 처참할 정도로 불행하고 궁핍한 삶을 살았으면서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는 점이다. 생활에 반비례해서 예술적 성공을 거둔 건 작가적 태도와 개성적인 세계를 창출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중섭은 예술과 현실 생활 사이에서 갈등이 컸고, 마침내 예술을 위해 현실을 돌보지 않았던 화가였다. 이 때문에 가족과 헤어지고, 사회로부터 격리돼 불안, 빈곤, 방랑으로 점철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후 추인 형식으로 재평가되고, 기구한 생애까지 부각되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대중적 인기까지 누리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짜가 어디 그림뿐이랴. '가짜가 진짜를 뺨친다'더니, 요즘은 가짜가 진짜보다 더 그럴 듯해 보이는 경우가 없지 않은 세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 사회를 '짝퉁 천국'이라고 극언했다. 가짜의 범람은 생활 속에서 가짜 불감증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렇다. 가짜인 줄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심지어 그럴 듯하기만 하면 가짜라도 좋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면 큰일이다. '가짜는 진짜로 보이고, 진짜는 가짜로 보인다'면, 가짜일수록 되레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가 발휘(?)돼 있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가짜 문화, 가짜 상품, 가짜 지도층이 판치는 사회는 안 된다. 진짜만 제대로 발을 붙이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짜를 가려내고 밀어내는 분위기가 우선되고 성숙해야 하지 않을까.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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