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아기돼지 삼형제가 스스로 집을 짓기로 했다. 첫 번째 아기돼지는 가까운 곳에서 짚단 더미를 구해 집을 짓고 만족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두 번째 아기돼지는 조금 더 멀리에서 작대기를 구해 집을 짓고 흐뭇해했다. 세 번째 아기돼지는 형들과 달리 먼 곳에 가 벽돌을 구해 집을 지었다. 벽돌로 집을 지으려면 힘들 줄 알면서도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열심히 벽돌을 날랐다. 첫째, 둘째가 집에 누워 콧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도 막내 돼지는 여러 날에 걸쳐 땀을 흘리며 집을 완성했다. 형들 돼지는 벽돌집을 짓는 막내를 비웃기까지 했다.
모든 민담에는 극적인 반전(反轉)이 있는 법. 이 이야기에서 반전은 늑대가 제공한다. 먹이감을 찾던 늑대가 첫째, 둘째 돼지가 지은 짚단더미'작대기 집을 입바람으로 훅 불어버리고 뒤를 쫓자 형제는 막내가 지은 벽돌집으로 도망쳐 겨우 목숨을 구한다. 늑대는 계속 바람을 불었지만 벽돌집은 끄떡없었다. 벽돌집 굴뚝으로 들어오려던 늑대는 아기돼지들이 준비한 냄비에 빠져 목숨을 잃고, 아기돼지 삼형제는 오랫동안 벽돌집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11명의 생명을 앗아간 상주 시민운동장 압사사고를 보며 새삼스레 영국 민담 '아기돼지 삼형제'가 떠올랐다. 축제에서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관람객들의 안전마저 도외시한 채 행사를 연 상주시 등이 짚단'작대기로 어설픈 집을 지은 아기돼지들과 닮았다는 생각에서다. 두 아기돼지들은 튼튼한 집을 지은 막내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가수 얼굴 한 번 보려고 운동장을 찾았던 사람들은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이번 상주 참사에서 보듯 지방에서 개최되는 대부분 축제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안전의식이 부족한 공무원들과 소규모 이벤트 업체들에 의해 개최되다 보니 사고가 일어날 필연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안전에 문제가 많은 축제가 난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선거를 의식한 지방자치단체장들 때문. 1994년 280여 개에 불과하던 축제가 이듬해 민선 지방자치 출범 후 급격하게 늘어나 올해엔 무려 1천200여 개에 이르고 있다. 표를 의식한 단체장들이 축제를 급조하고, 경험없는 이벤트 업체들이 마구잡이로 축제의 대형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안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 경북 군위군은 지자체 출범 후 단 한 차례도 축제를 열지 않아 축제에 '목을 매는' 다른 지자체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군은 축제비용을 마을 진입로 포장 및 상수도 시설 확충 등 주민숙원 사업비로 돌렸다. 축제가 자칫 선심행정과 낭비를 부추길 수 있다는 군수의 판단이 그 이유라고 하니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언제까지 우리들은 짚단이나 작대기로 '엉터리 집'을 짓는 아기돼지들의 우(愚)를 되풀이해야 할 지 가슴이 답답하다.
이대현 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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