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학교 운동장

가을의 학교 운동장은 활력의 장이다. 어느 학교 할 것 없이 뛰노는 학생들로 힘이 넘친다. 가장 화창한 날을 택해 펼치는 가을 운동회는 그 백미다. 힘껏 달리며 청량한 공기와 맵싸한 햇살을 받으며 대자연을 호흡하는 날이기도 하다. 특히 만국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펼쳐지는 초교 어린이들의 가을 운동회는 그 속에 희망과 미래가 담겨 있어 누가 보아도 뿌듯하다. 이날의 함성은 가장 아름다운 화음이다.

◇ 우리나라 학교 운동회는 1896년 처음 열린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의 한성영어학교가 영국인 교사 허치슨의 지도로 5월 2일 동소문 밖 삼선평(三仙坪)에서 화류회(花柳會)라는 이름의 운동회를 열었고, 이어 같은 해 5월 30일 관립학교 연합운동회가 현재의 동대문운동장 자리에서 계동'정동'매동'장동 초교생 181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때부터 학교별 운동회가 정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 당시 경기 종목은 100(步)'300보'600보 달리기와 포환던지기'줄다리기'2인3각'당나귀달리기 등으로 순수 체육대회라기보다 단합과 여흥을 즐기는 성격이 강했다. 이런 볼거리에 학부모'주민이 참여하면서 초교 운동회는 오늘에 이르렀다. 종목도 많이 바뀌었다. 달리기는 약방 감초격이고 박 터뜨리기, 기마전 등 재미있는 종목들이 많이 개발됐고 최근엔 신종 댄스'매스게임까지 가세해 더욱 다양해졌다.

◇ 청'백 응원전 속에 펼쳐지는 어린이들의 잔치는 떠들고 까불어서 이쁘다. 이 날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잘난 학부모, 어른이라도 조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요일만 되면 학교 운동장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른들이 장악한다. 동창회나 각종 사회'친목단체들의 잔치 마당이 된다. 이렇다할 넓은 공간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의 놀이 마당, 꿈의 운동장을 짓밟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듯한 일부 단체의 음주가무와 악다구니다.

◇ 지난 일요일, 학교가 밀집한 대구 만촌3동은 도처의 확성기 소리로 소음의 바다를 이뤘다. 한 고교 운동장에서는 뜻 있는 행사조차 무색케 하고 확성기 소리를 극도로 올려 장시간 혀꼬부라진 노랫소리를 인근 주민'학생들에게 자랑하는 추태를 벌였다. 한 어린이 집 행사도 아이들 고막 터질까 걱정될 정도로 확성기로 시종 고래고래 악을 썼다. 단속하고 처벌해야 할 소음공해다. 꿈의 운동장을 더럽히지 말라.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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