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깊어가는구나. 지금쯤 산에 가면 도토리랑 상수리를 많이 주울 수 있지. 그런데 말이야, 도토리를 처음에는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니? 그냥 '톨'이라고 했어. '밤 한 톨, 두 톨'이라고 할 때의 '톨' 말이야.
그런데 그 '톨'이 어떻게 하여 '도토리'가 되었을 것 같니?
옛날에 한 임금이 있었지. 이 임금은 매일 먹고 놀기만 했대. 그래서 북쪽 오랑캐들이 '이때다!'하고 쳐들어 왔지. 준비가 없었던 임금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산 속으로 쫓겨갔대.
백성들은 이런 임금을 좋아하지 않았어. 산 속으로 도망친 임금은 점점 기가 죽었지. 먹을 것이 줄어들고, 신하들이 하나 둘씩 흩어졌기 때문이지.
이윽고 겨울이 다가오자 먹을 것이 거의 바닥나고 말았대. 배가 고파진 임금과 남은 신하들은 산을 샅샅이 뒤졌대. 그러나 찾아낸 것은 '톨'밖에 없었대. 하는 수 없이 임금은 톨을 물에 담가 떫은맛을 우려낸 뒤 삶아 먹기도 하고, 또 묵을 만들어 먹기도 했대. 조금 남은 꿀에 버무려 먹기도 하고…….
임금은 이 음식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귀한 음식이니 '수라'라고 하되, 수라 중에서도 으뜸인 '상수라'라고 부르도록 일렀대. 이 소문은 곧 널리 퍼졌지.
"뭐라고? 그렇게 떫은 '톨'을 '상수라'라고까지 부른다고?"
"그러게 말이야. 이제야 임금이 정신을 차리신 모양일세."
마침내 백성들은 임금을 도와주기로 했지. 호미와 괭이를 들고 모두 일어나 오랑캐들을 마구 쫓아내었지.
임금은 다시 궁궐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지.
'이제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야.'
임금은 좋은 옷과 음식을 멀리한 채 부지런히 일을 했어. 그래서 나라는 점점 튼튼해져 갔지. 그러자 임금에게 아첨하기를 좋아하는 한 신하가 나서서 말했어.
"임금님, 이제 이만하면 됐습니다. 이제는 좋은 옷도 입으시고, 좋은 음식도 좀 드십시오. 임금님이 건강하셔야 나라도 튼튼해지는 법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옛날 일을 잊어버리고 슬그머니 다시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어.
"이러시면 안됩니다. 아직은 할 일이 많습니다."
산 속에서 끝까지 임금을 모신 늙은 신하가 나서서 말렸지만 임금은 도무지 듣지 않았대. 생각 끝에 이 신하는 임금에게 톨을 바치며 말했지.
"임금님, 이 톨을 한번 맛보십시오. 우리가 피난길에 '상수라'라고까지 부르며 귀하게 여기던 것이옵니다."
"에이!"
임금은 톨을 보고는 입에 떫은맛이 감도는지 한참 망설이다가 겨우 맛을 보았대.
"아이쿠, 떫어! 이걸 어떻게 '상수라'라고 할 수 있겠소. 도로 '톨'이라고 하시오."
그렇게 하여 '톨'은 '도로 톨이'가 되어 '도토리'가 되고, '상수라'는 '상수리'로 변하였지. 또 꿀에 버무려 먹었다 하여 '꿀밤'이라는 말도 생겨났고…….
얘야, 그 뒤 이 나라는 또 어떻게 되었을 것 같니?
심후섭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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