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12월 19일 첫 공사를 시작한 대구지하철 2호선. 8년 9개월여 만인 오는 18일 화려한 개통식을 가진다. 지하철 2호선 개통을 앞두고 '대구 동서를 가로지르는 교통혁명', '전국 최고의 안전철', '최첨단 시설'등 각종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지만 개통하기까지의 공사현장 뒷이야기는 사연도 많고 눈물겹다. 대규모 공사현장이었던만큼 각종 기록들을 쏟아냈을 뿐 아니라 많은 땀과 희생도 따랐다.
◇공사현장에서 나온 기록들
9년 가까이 지하의 땅을 파내면서 나온 흙은 얼마나 되고 어디로 갔을까? 인부들이 먹은 밥은 몇 끼나 될까? 몇 명이 다쳤을까? 대구지하철 2호선 공사현장에서 나온 기록들은 모두 유래가 없던 것들이었다.
먼저 26개 역사를 만들고 전동차가 다닐 터널을 뚫으면서 파낸 흙의 양은 15t 트럭으로 88만여 대. 한 곳에 쌓으면 두류공원 절반 정도 크기의 산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이 흙들은 대부분 달성군 다사읍 죽곡지구 29만 평에 이르는 넓은 땅을 5∼10m 높이는데 사용됐다. 해안가 수십만 평을 메우는 간척사업에 비견될 만한 양이다. 이외에도 성서 3차 산업단지, 달성군 일부 상습 침수지역, 대구-부산간 고속도로에 이들 흙들이 사용됐다.
연간 공사장에 투입된 인원은 692만명. 이들이 먹은 밥만해도 공기밥으로 1억2천456그릇(1명당 평균 하루2끼 2그릇). 본부의 한 간부는 1억2천 그릇을 한줄로 세운다면 달구벌대로를 왕복할 수 있을 정도라고 다소 과장된 비유를 하기도 했다. 3~4끼당 1끼정도는 자장면, 칼국수, 라면 등을 먹었다고 치면 분식류도 3천여만 그릇은 족히 먹었다.
공사기간동안 숨진 사람은 10명, 다친 사람은 128명이다. 이들은 모두 목숨을 담보로 지하철 2호선 건설에 매진한 숨은 희생자들. 연도별로 보면 2000년과 2001년에 각 3명씩, 2002년 2명, 2003과 2004년에 각 1명씩 숨졌다. 상수도관 파손도 4차례나 있었으며 통신선로, 중장비 파손도 각 1차례씩 있었다.
특이사항 하나. 공사현장에 여성은 단 1명도 없었다. 1호선 건설공사 중 여성인부 2, 3명을 고용했다가 부상을 당해 어려움을 겪었던 지하철건설본부는 여성이 일하기에 위험하다며 2호선 건설땐 아예 뽑지를 않았다.
◇제일 어려웠던 공사구간
1호선에 비해 평균 5∼10m정도 더 깊은 지하철 2호선은 지하 20m이상 땅을 파서 터널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특히 어려움이 컸다.
최대취약 구간은 2호선 3공구에 해당하는 금호강 강창교 아래 하저터널. 강창역은 눈물로 이룬 역인셈이다.물이 새어들어와 애를 먹었는가 하면 이를 보강하는데도 한달이상 걸렸다. 24시간 교대로 쉬지않고 공사해 2개월여만에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6공구 두류역 인근도 어려웠던 공사구간. 지반이 여러층으로 된 단층지층이어서 애를 먹었다. 굴착도중 쉽게 무너져내려 공사가 1개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신천을 통과하는 구간도 만만치 않은 공사였다. 방수작업을 철저히 한 뒤 공사를 마무리했다.
월드컵이 개최된 지난 2002년에는 공사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1년 전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낮에는 지하터널 공사, 밤엔 도로포장을 해 개막 전에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런 힘든 노력때문에 범어네거리에 20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등 거리마다 월드컵 열기로 가득찼다.
◇공사 중 겪었던 각종 해프닝
공사기간이 길었던만큼 각종 일화들도 많았다. 5년 전 현대건설 측량실장이 지하철 4공구 평화타운 입구에서 성서IC간 장대터널 관통직전에 정확하게 굴착된 사실을 확인하고 기쁜 맘으로 새벽에 지하철 본부 간부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잠결에 전화를 받은 이 간부는 터널사고로 오인해 비상연락망을 가동하고 난리법석을 피우기도 했다.
3년 전 월드컵을 대비해 수성교 동쪽 도로복구를 완료한 것을 일부 시민들이 지하철이 개통된 것으로 착각해 오해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었다. 몇몇 시민들은 월드컵 완료 후 또다시 재굴착한다고 생각해 공사반대입장을 밝히며 항의전화를 하기도 했다.
현장근로자들의 안전을 위해 '삼진아웃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안전모 미착용, 안전교육 불참, 현장 흡연 및 음주 등이 적발사항. 1차 적발시 경고장 발부, 2차 다음날 출근금지, 3차 현장퇴출. 2000년 도입돼 지난 5년동안 1차, 2차 적발건수는 87건, 23건이었으며 세번씩이나 걸려 쫓겨난 사람도 4명이나 됐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 지난 2001년 3월22일 2호선 건설의 최대 취약구간이었던 금호강 강창교 아래 하저터널에서 현장인부들이 방수시트를 부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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