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플리'를 통해 자아 정체성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청소년기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 등의 고민을 하면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시기다. 인간은 다양한 특징을 가진 정체성의 존재다. 인생의 목표, 직업, 종교, 정치적 신념, 성 역할이나 이데올로기 등이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인이다.
문화적 충격은 취약한 인격 구조를 가진 사람에게 정체성 혼란을 초래한다. 주인공 리플리는 낮에는 호텔 보이로, 밤에는 피아노 조율사로 일한다. 어느 날 파티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던 리플리는 그린피스라는 갑부의 눈에 띈다. 리플리가 빌려 입은 재킷에 달린 프린스턴 대학 배지 때문이다. 그린피스는 프린스턴 출신인 자신의 아들과 리플리를 동창생으로 생각하고 리플리에게 제안을 한다. 망나니 아들 디키를 이탈리아에서 데려와 주면 많은 돈을 주겠노라고.
이런 인연으로 리플리는 디키를 만나게 되고 디키를 통해 평생 사용해도 바닥나지 않을 돈과 아름다운 여인, 달콤한 인생, 자유와 쾌락을 맛 보게 된다. 호텔에서 시중만 들던 리플리는 자신이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디키는 내가 꿈꾸어 오던 사람이다. 그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 리플리는 디키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거울을 보며 디키 말투를 따라하고 노래 제목이나 명품의 이름을 암기하려고 애쓴다. 스키나 요트를 타 본 적도 없던 리플리는 디키와 온갖 오락을 즐기면서 딴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러던 리플리는 우발적으로 디키를 살해하게 되고 그 후 본격적으로 디키 행세를 한다. 디키의 사인을 연습하고 헤어 스타일도 디키처럼 바꾸고 말투나 걸음걸이까지 흉내를 낸다. 고급 호텔에 디키 신분으로 투숙하고 명품을 구입한다. 리플리는 현실에서 익숙하지 않았던 물질적인 풍요 속에 놓이면서 점차 정체성의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내세울 것 없고 연약하고 순진한 내면을 가졌던 리플리는 자신이 꿈꾸던 삶을 접하게 되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망각한다.
결국 리플리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유지하기 위해 거듭해서 살인을 하게 된다. 리플리는 실제와 허상 간 메울 수 없는 괴리를 확인하고 어둡고 씁쓸한 대리 인생 여행을 끝낸다. 속임수와 살인에 대한 윤리적, 법적인 처벌보다 더 음습한 내적인 공허와 탈진이 리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에릭슨은 사회적 과업과 대인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면 정체성의 혼란이 초래된다고 했다. 하비거스트는 청소년기의 발달과제 10가지를 제시하면서 그 중 정체성 수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정체성 수립을 잘 하지 못하면 정체성 확산(identity diffusion)이 나타나 의욕이나 흥미를 잃어버리고 자신감이 없어져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불러 일으켜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를 가져온다. 이런 위기는 정신발달 단계에서 퇴행을 초래하고 여러 가지 정신병리를 보일 수 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업능력 저하, 우울감, 무력감, 약물남용과 청소년 비행을 초래하고 심할 경우 정신장애까지 나타날 수 있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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