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시가스료 수백억대 폭리-(하)소비자 보호대책은 없나

중·장기적 개선책뿐…당분간 피해 불가피

전국의 도시가스회사들이 매년 수백억 원대의 부당요금을 징수했다는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관계당국은 5년 전 감사원 시정통보 이후 각종 개선대책을 내놓았지만 그것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시민들의 불만이 높다. 더구나 현행 도시가스 공급규정이 도시가스회사에만 유리하게 돼 있어 소비자 보호대책은 전무하다는 지적이 많다.

▲소비자 보호대책은 없나

현행 도시가스 공급규정에는 압력에 대한 보정(補正·참에 가까운 값을 구하는 것)방법만 있을 뿐, 온도변화에 대처할 보정방법은 없다.

따라서 가스 공급압력이 높아 사업자가 손실을 볼 경우에는 이를 바로잡을 수 있지만 온도 상승으로 부피가 팽창했을 때 소비자가 요금을 초과 부담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한 전문가는 "아파트 고층 가구에 설치된 계량기는 (온도상승 등으로) 가스부피 팽창률이 저층보다 높아져 보다 많은 요금을 낼 수밖에 없다"며 "도시가스 사용량 산정에 온도, 압력 보정계수를 둘 다 넣어 정확한 사용량을 산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도상승으로 가스부피가 팽창하는 것을 정확히 산정하기 위해서는 온압보정기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온압보정기 개발업체에 따르면 현재 5만 원대의 제품이 개발 중이라고 했다. 관계당국은 2만~3만 원대의 저렴한 제품이 개발돼야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관리감독기관인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각종 개선안을 내놓았다. △계량기 허용오차를 ±3%에서 ±2.25%로 강화 △온압보정기 설치 수요가에는 연 1회 제품 점검 △오피스텔·상업용빌딩 등에도 온압보정기 설치 권장, 또 올해 말까지 △전국 33개 도시가스회사의 155개 공급관리소에 가스분석기를 설치키로 한 것. 그러나 이 개선안은 모두 중·장기적인 대책인 데다 도시가스회사들의 의지도 부족해 소비자들의 추가부담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산자부 관계자는 "원격검침시스템을 도입하면 한국가스공사와 도시가스회사의 검침시점 차이에서 오는 판매량 차이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저렴한 소형 온압보정기를 개발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했다.

요금승인권과 사업허가권을 가진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행 도시가스사업법에는 '시·도지사가 도시가스사업자의 공급규정이 특정인을 차별할 경우 규정 변경을 명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

▲시·도는 까막눈

도시가스회사들이 가스이용자들로부터 매년 수백 억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기는 동안 각 시·도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시·도의 경우 요금승인권과 사업허가권 등 막강한 권한이 주어져 있지만 가스회사의 실상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전문성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보니 도시가스회사 측에 불리한 정보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르면 도시가스사업자는 가스 요금 등에 관한 공급규정을 정해 산업자원부장관 또는 시·도지사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시·도지사 등은 요금이 적정하지 못할 경우 가스사용자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기능은 거의 유명무실하다.대구시 경우 매년 7월 외부 연구기관(에너지경제연구원)의 '도시가스 공급비용 산정 연구용역 보고서'를 바탕으로 요금을 조정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용역의 근거가 되는 구체적인 자료는 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용역기관에 전달되고 있다. 요금인상은 물가심의위원회를 거쳐야 하지만 구입량과 검침량 차이로 발생하는 구조적인 부당이득에 대해서는 내막을 알 수 없다.

한 담당 공무원은 "보고서는 생소한 회계·화학용어로 가득하고 민간기업이라 감사권한마저 없어 가스회사 측이 '그런 자료가 없다'고 하면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며 "온도 차에 따른 가스팽창'이라든가 '미검침 재고량'이란 용어 자체를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감사원은 가스 소비자들이 수년간 억울한 요금을 물고 있었고 가스회사들은 수천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광역자치단체의 감시능력이 없다 보니 소비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어도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없다. 담당자가 많은 업무를 맡고 있어 가스 부문에 집중할 수 없는 것도 또다른 이유다. 전국 시·도가 예외없이 비슷한 형편이다.

도시가스회사들이 거두는 부당 이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각 시·도가 전문성을 확보해 적극적인 사전·사후 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획탐사팀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사진: 도시가스 공급규정이 가스회사 측에만 유리하게 돼 있어 온압보정기, 원격검침 시스템 등 소비자 보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사진은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한 빌라에 설치된 도시가스 배관.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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