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창동 감독 "작은 영화들 사랑해달라"

이창동 감독이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처음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이 감독은 13일 오후 7시 해운대 메가박스 옥상 야외 카페에서 진행된 'PIFF 관 객 카페'의 마지막 게스트로 모습을 드러냈다. 모자를 눌러쓴 청바지 차림의 편안한 모습으로 60여명의 관객과 만난 그는 이들과 40여분간 솔직, 담백한 대화를 나눴다.

장관직을 물러난 이후의 근황에 대해 이 감독은 "장편 소설을 그렇게 써보고 싶 었다. 그러나 소설 쓰는게 쉽지 않았고 이러다간 영화도 못 만들것 같아 당분간 소 설은 뒤로 보류해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작 영화에 대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 영화에 대해 얘기하기 쑥스 럽다"면서 "간단히 말씀드리면 멜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밀양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서울에서 밀양으로 내려와 피아노 학원을 개업한 여자와 밀양 에서 카 센터를 운영하는 남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공직 생활의 경험에 대해서는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힘들었지 만 끝나고 나서도 치러야할 것이 많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각오는 했던 것이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긴 하지만 언론을 기피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보다는 좀 덜 노출되고 싶어서다.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동안 에는 얼굴을 보여야하는 의무가 있겠지만 끝나고 나서는 편하게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해 공직 재직 당시와 감독으로 돌아온 현재 사이의 경계를 확실히 긋고 싶은 바람을 밝혔다.

장관 재직 당시 이룬 것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대답하 기 참 조심스럽다"면서 "이 정부 뿐만 아니라 앞으로 수십년 동안 문화예술이 가야 할 방향과 구체적인 정책 수단들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해야할 일이라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한 관객은 "다시 국어 교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는 이색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영화를 하기 위해 교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교사 생활이 정말 힘들었다"면서 "남들은 내가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그만됐다고 했지만 사실 은 백수가 된 것이었다. 베스터셀러 작가도 아니어서 힘들게 생활하다가 영화판으로 왔는데 이런 식으로 하다간 가족을 굶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도 들었다. 교사를 그만 둔 것은 특별히 용감해서라기 보다는 무모했기 때문에 불확실하고 모험적인 생 활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그는 한국영화 표현의 다양성이 자본의 논리에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 문에는 "관객 여러분이 부산영화제를 사랑해주는만큼 평소에도 작은 영화들을 사랑 해준다면 그런 영화들이 계속 나오고, 그 영화들이 새로운 작업을 통해 한국영화 산 업의 건강성과 생명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이 표현방식이나 삶의 태도에서 훨씬 진지 하고 모범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가 자본으로부터 덜 종속되서 그렇다 는 지적 역시 상당부분 맞다. 그러나 영화제는 벼룩시장처럼 일정 기간 필요한 사 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유통되는 일종의 소수 시장의 개념"이라며 일반 영화 시장과의 단순 비교를 경계했다.

그는 "부산영화제가 이렇게까지 성공하게된 것이 한국영화 산업에 굉장히 큰 영 향을 미쳤다. 세계 어느 영화제에서도 볼 수 없는 활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평소 서울 등 작은 극장에 가보면 관객이 없다. 아주 훌륭한 영화를 상영하는데도 불구하 고 객석에 한두명 앉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부산영화제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는 열정이 평소에는 어디 갔는가. 영화 애호가들이 더 적극적으로 평소에도 영화 를 사랑하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효과적인 영화 발전의 길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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