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피라미드와 루스벨트

1972년 아스완 댐이 건설되기 전까지 나일강은 해마다 범람했다. 7월부터 10월까지 넉 달 동안 나일강의 수위는 평상시보다 10m 이상 높아져 나일강 유역이 거의 물에 잠기면서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외곽 기자지구의 대피라미드 인접 지역까지 물이 차올랐다. 아프리카 내륙의 각종 유기물질이 침전되면서 비옥해진 이 땅을 그들은 '케미(Kemi)'라고 불렀다. 이집트인들에게 나일강의 범람은 '신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나일강이 범람하는 7월부터 10월까지 농민들은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당장 먹고살기가 어려워진 것은 불문가지. 춘궁기처럼 민심은 흉흉해지고 사회가 동요하면서 정치적으로 큰 압박이 되었을 것이다. 이집트의 절대 통치자였던 파라오 등 이집트 지배층은 이런 백성들의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했을까.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를 지낸 물리학자 커트 멘델손(1906~1980)은 저서 '피라미드의 수수께끼'에서 피라미드에 대해 색다른 가설을 내세웠다. 그는 '피라미드 건축의 원래 목적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이자 사회 통합과 공동목표 성취를 위한 리더 십의 문제였다 (organizational and logistical skills of the ruling class)'고 주장했다.

멘델손 교수는 피라미드 축조가 집중된 이집트 제4왕조의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등 파라오들이 홍수로 인한 농한기 때 농민들을 대거 동원, 대피라미드를 비롯 이집트 전역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를 짓게 하고 그 대가로 백성들을 먹이고 입힘으로써 백성들의 불만과 사회적 불안 요소를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즉 피라미드는 공공의 목표완수를 위한 고도의 통치술의 결과물이고, 피라미드 축조는 사회 안보시스템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가설이 맞다면 피라미드는 힘의 산물이 아니라 훗날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이나 공급경제학을 내세운 '레이거노믹스'의 프로토타입(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어저께 국무총리가 대독한 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무엇보다 경제 활성화에 최우선을 두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개혁 과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면 늦어도 2009년 국민소득 2만 달러, 국내총생산(GDP) 1조 달러를 달성하고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 삶의 질이 보장되는 선진사회복지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너무 조급한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드리워져 있다. 호주머니는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고 심각한 청년실업과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직장생활, 열악한 복지환경, 서민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주택가격 등 불안요소들은 여전하다. 그래서 모두들 살기가 팍팍하다고 난리다.

물론 정치권에서 이런 불안 요소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고 기업들도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의 인자는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대공황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아 루스벨트는 어떻게 해서든 절망에 빠진 미국민들에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 국민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여러분의 돈을 다시 은행에 보관하는 것이 집안에 두는 것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그의 설득력 있는 호소에 미국민들은 출금이 아니라 예금을 위해 은행 앞에 줄을 섰다고 한다. 불안과 염려를 낙관과 희망으로 바꿔 놓을 정치 지도자들의 진정한, 설득력 있는 호소가 우리 국민들의 귀에는 언제쯤 들릴까.

서종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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