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업으로 새 인생 활짝 핀 노인들

하는일 재미있어 잔업도 거뜬

대구 성서공단·달성공단과 달서시니어클럽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일자리를 구한 노인들은 40여명. 이들은 두 기관이 지난 4월 맺은 '사회공헌 협약식'에 따라 꿈에 그리던 취업을 한 것. 힘에 부쳐 회사를 그만 둔 노인들은 서너 명에 불과하다. 젊은이들도 꺼리는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봤다. 이들은 주위의 우려와 달리 '산업역군'으로서 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성서공단

지난 12일 찾은 보도블록 생산기계를 만드는 하렉스엔지니어링. 지난 8월 취업한 구성도(63·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철재료를 절단하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구씨는 다니던 제조업체가 일자리를 줄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석달을 '백수'로 지냈다. 노는 동안 좀이 쑤셔서 못 견뎠다는 구씨는 수차례 취업문을 두드렸지만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구씨는 "업체들이 일을 시켜보지도 않고 나이가 많다면서 채용을 거절했다"며 "많은 회사들이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공장에서 멀지 않은 체육공원에도 노인 3명이 일하고 있었다.이곳에서 최고령자인 진무기(66·대구 달서구 이곡동) 씨는 제초기를 들고 잔디를 깎는데 여념이 없었다. 지난 7월부터 이곳에서 일한 진씨는 잔디깎기, 나무가지 치기, 청소 등 체육공원을 관리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보수는 한달 40만 원에 불과하지만 일할 수 있다는 데 더 큰 보람을 얻는다고 했다. 진씨는 "공단 직원들이 깨끗한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서상근(64·대구 달서구 이곡동) 씨도 공원 주변을 돌아다니며 쉴 새 없이 낙엽을 줍고 있었다. 서 씨도 이곳에 오기 전 고용안정센터 등을 찾아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지만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그러나 서씨는 취업문을 계속 두드려 볼 생각이다. 이곳에서는 오랫동안 일을 못하기 때문. 서씨는 "노인 취업이 어렵다지만 열심히 취업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며 "노인일자리박람회가 열리면 가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달성공단

같은 날 방문한 전자부품을 만드는 하나전자. 공장 안에 들어서자 검은 머리 속에서 은발이 유난히 돋보였다. 노인이 공장 한 구석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전자회로기판의 오물을 칫솔로 닦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큰소리로 수차례 부른 뒤에야 돌아본 남인호(62·대구 남구 대명동) 씨와 김석환(65·대구 달서구 상인동) 씨는 지난 6월 이 회사에 취직했다. 잠시 일손을 멈춘 두 사람은 "힘든 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회사에서는 쉬운 일만 시킨다"며 "이것도 노인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냐"며 웃었다. 이들은 보통 오후 5시 30분까지 일하지만 일이 많을 때는 잔업근무도 거뜬히 해낸다.

남씨는 3년 전 공무원을 퇴직하고 소일하다 이 일을 시작했다. 그는 "매일 젊은이들과 똑같이 일하고 통근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김씨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 뒤 단순직을 전전하다 이 공장에 취직했다. 김씨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모범이 돼서 열심히 일한다면 업체에서도 노인들을 더 많이 채용할 것"이라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여전히 높은 취업문

이들을 고용한 대부분의 업체들은 "노인들을 처음에 채용할 때는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을까 우려했지만 지금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뛰어나고 젊은 사람들과 비교해도 꼼꼼히 일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대우 성서공단 체육공원 관리소장은 "솔직히 처음 노인들을 고용했을 때는 과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며 "노인들을 최대한 많이 고용하고 싶어도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안타깝다"고 했다.

공단에 취업한 노인들은 업체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노인들을 고용할 경우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데다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다고 기피한다는 것.

성서공단 내 한 업체 관계자는 "공장 일의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여건이 되면 노인들을 가능한 한 더 많이 채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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