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대구사람' 되기

얼마 전 한 강연회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강연자는 대구에서 30년 세월을 살아왔는데, 소위 '대구사람'들이 당신을 아직도 '대구사람'으로 보아주지 않는다고 했다. 보통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무슨 문제라도 생길라치면 "그 사람 고향이 어딘데? 어디 사람인데?" 하는 것이 관심사가 되고, 그 분의 고향이 경남이라는 이유로 "그럼 그렇지, 여기 사람이 아니구만,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라고 수군댄다고도 했다.

본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거의 항상 '문제상황' 내지는 '위기상황'에서 불거지기 십상이다. 그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야길 들으면서 궁금한 것이 생겼다. '대구사람'의 기준은 과연 뭘까?' 어떤 이의 말에 의하면 일단 대구·경북 지역에서 태어나야 하고,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지가 중요하다는데, 그 말이 맞다면 그 분도 필자도 아무리 애를 써도 '대구사람'이 되기는 요원한 일인 셈이다.

반대로 대구·경북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외지에서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은 그 기준에 의하면 -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여전히 '대구사람'일 터이다. (그 강연회 이야기를 필자에게서 전해들은 소위 '대구사람'의 반응도 참 재미있었다.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당연하죠" 한다. 대구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다나…)

같은 고향, 같은 (고등)학교 출신을 만났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고, 팔이 어느 정도 안으로 굽을 수 있다는 건 자연스럽고, 그것 자체가 잘못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30년 세월을 함께 보낸 사람을 '외지인'으로 규정짓는 잣대가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요즘 같이 '세계화'된 시대에-어머니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아버지는 중국 사람이고, 자신은 미국인인 그런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 세상에-걸맞지 않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대구사람들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들을 정치적으로 가려내는데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기도 하고, 수많은 새로운 인연들의 가능성에 문을 걸어 잠그는 '자폐'의 근원이 될 터이다. 그것이 대구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정체(停滯)를 낳는 정체된 정체성(正體性)의 한 근원이 아닐까.

그렇게 닫힌 마음이 소위 '대구사람'들의 독특한 정서라면 '외지사람'인 필자는 '대구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물론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그런 폐쇄성 속에 나도 함께 가둬달라 애걸하는 대신에 조금 외롭고 쓸쓸해도, 자유로운 '외지인'으로 이 척박한 땅에서 꿋꿋하게 살아남는 길을 택하리라.

그리고 그런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이 불행하게 짬뽕된 자폐성이 '그들만의' 대구를 얼마나 어렵게 만들 수 있을 지에 대해 '불길한 예언'을 해야겠다. 그럼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대구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려나…. 어디 사람인데?

천선영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