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세계사/윌리엄 맥닐 지음/이산 펴냄
최근 아시아지역에서 번질 조짐을 보이는 조류독감이 '21세기 페스트'로 돌변할 지 모른다는 견해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또 하나 조류독감이 1918년 창궐한 스페인 독감과 유사하다는 연구 발표는 아찔하기까지 하다. 스페인 독감은 미국과 유럽 등에서 5천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20세기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된 전염병이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철새가 조류독감 감염의 매개체로 지목되면서 전국이 방역비상에 걸렸다. '인간 대 인간'의 조류독감 전염사례는 아직 없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왔지만, 그 '가능성'이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카고 대학 교수로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는 바로 이런 점에서 주목된다. 저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사를 훑으면서 전염병을 역사의 흐름과 연관시킨다. 전염병을 일회적인 사건으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인간사의 물줄기를 틀어버리는 중요 변수로 파악하는 접근법이 흥미롭다.
나아가 그는 전염병도 세계화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2003년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인 사스(SARS)가 홍콩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 이틀만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같은 '사스'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특히 그는 지역간 교역과 교통이 발달할수록 전염병의 피해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실증적 사례를 들고 있다. 몽골족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간 질병의 교환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1346년 크림반도를 공격하던 몽골군 안에서 페스트가 발생했다. 몽골군은 곧 퇴각했으나 유럽의 재앙은 이때부터였다. 유럽에 유입된 페스트는 1350년까지 불과 4년 동안 유럽인구의 3분의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1521년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단 600명의 병사로 인구 수백만의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했다. 코르테스의 무기는 바로 전염병이었다. 이후 120년 동안 멕시코와 페루는 유럽인이 지난 4천년 동안 겪었던 전염병을 순차적으로 앓았다. 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 인플루엔자, 디프테리아 등을 경험하면서 이 지역은 인구가 한때 90%나 감소했다.
저자는 19세기 인류의 대재앙이었던 콜레라가 인류에게 공포를 안긴 동시에 대도시 상하수도 시설과 위생상태를 개선하기 시작하는 업적을 세웠다는 생태적 영향도 충실히 짚는다.
그러나 이 순간도 예측불허의 신종 전염병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인류의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해왔으나 생태환경의 변화로 인간과 동물이 균형을 잃으면서 점점 인간이 위협받고 있는 형국이다. 인간이 바이러스, 세균과 어떻게 맞서 살아갈지 자못 두려움이 앞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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