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제한 클리닉'을 처음 설치한 것은 미국의 마거릿 생어다. 1916년 10월 16일 뉴욕 브루클린에서의 일이다. 지금은 너무나 흔한 얘기지만 당시엔 '피임'을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클리닉 개설 열흘 만에 그녀는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지 어떤 사람에게 피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뉴욕주법 제1천142조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생어는 결국 30일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악법철폐'를 위한 투쟁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후원자들이 급증했다. 의사들은 물론 학자들까지도 동참했다. 생어의 투쟁은 1936년 63년 동안 지속됐던 컴스콕법이 폐지되면서 산아제한 합법화란 큰 결실을 맺었다.
생어가 이처럼 '산아제한'에 열정을 바치게 된 계기는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낳은 자녀 수는 생어를 포함해 모두 11명이었다. 어머니가 48세에 숨을 거두자 생어는 잦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건강에 폐해를 끼친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간호사가 돼 피임법을 전도하게 됐던 것이다. 여성을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것은 한 여성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854년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 출생 ▲1999년 육군 상록수부대 선발대, 동티모르 도착.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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