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참석자들은 대통령 부인 로라 여사의 깜짝 유머에 포복절도했다. 정숙한 이미지의 로라 여사가 "밤 9시만 되면 남편은 잠에 곯아떨어지고, 난 혼자 '위기의 주부들'을 본답니다. 나야말로 위기의 주부죠"라고 너스레를 떨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유머가 누군가가 써준 것으로 밝혀져 좀 우습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TV드라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은 일약 전세계적 화제가 됐다.
○…지난해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이 드라마는 몇 달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고 있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주부 4명의 고만고만한 일상과 일탈, 그리고 살인사건을 파헤쳐 가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매회 흥미롭게 펼쳐진다. 겉보기엔 평화롭고 행복이 넘쳐 보여도 알고 보면 문제 없는 가정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묘한 동질감과 대리만족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이번엔 '위기의 영국 주부들'이 화제다. 영국 여성 문화 전문사이트 '피메일퍼스트(Female First)'가 전업주부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국 주부의 90% 정도가 바람이든 도박이든 알코올 중독이든 신용 불량이든 저마다 한번쯤 위기를 겪었다는 거다. 자존감 부족에다 기껏 정원사 이하 취급을 받는 것으로 여겨질 만큼 아내로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유다.
○…요즘 우리나라 주부들 사이엔 TV드라마 '장밋빛 인생'이 온통 화제다. 지지리 궁상맞을 만큼 악착같이 아끼고 아껴 겨우 살 만하게 되자 바람난 남편은 이혼장을 들이대고 설상가상 덮쳐온 위암. 최진실이 연기하는 '위기의 아내'는 수많은 주부들로 하여금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분노하게 만들면서 동질감을 형성하고 있다.
○…존 그레이 소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사고방식과 언어 표현, 행동 등 모든 점에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마치 각각 화성과 금성에서 날아온 사람들처럼. 때문에 남녀 간 근본적 차이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다른 점을 편하게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위기의 주부를 다룬 드라마들로 인해 "부부란 무엇인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는 주부들이 많아질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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