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검찰 일선 분위기 "지금 떨고있니"

조직 수술·정치권 견제 우려

지난 14일 오후 김종빈 총장이 천정배 법무장관의 지휘를 수용하는 성명서를 발표할 때만 해도 사태가 마무리 되는 것으로 이해했던 대구 고·지검은 이날 밤 총장의 사퇴서 제출, 16일 사표 수리 등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다.

특히 검찰은 대통령이 김 전 총장의 사퇴를 항명 수준으로 받아들이며 격노했다는 소식에 대해 향후 검찰에 불어닥칠 대대적인 조직 수술이나 정치권의 검찰 견제를 우려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총장의 사퇴서 제출 이후 평검사들은 총장의 용퇴를 내심 반기면서 검찰을 흔든 천 장관도 동시에 퇴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17일 오전 김 전 총장이 전날 정상명 대검 차장을 통해 사퇴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일선 검사들에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자제를 당부한 서신이 검사 및 직원들에게 전달되면서 검찰 분위기는 침울하면서도 비교적 차분해 졌다.

이날 대구고검은 서영제 고검장이, 지검은 박상길 지검장이 각각 주재한 간부회의를 열고 "검찰 조직원 모두가 차분한 마음으로 검찰권을 엄정히 행사함으로써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기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일선 검사들은 현 정권이 검찰을 보는 시각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검찰을 통제되지 않는 권력으로 보면서 검찰대 비검찰의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법무장관이 "장관의 권한으로 권력형 비리나 부패사건이 아닌 일개 교수의 공안사건 발언에 대해 인권수사 원칙을 강조하라고 지시했는데도 검찰이 반발하는 것은 부당하다"거나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권은 민주적 통제 아래서만 보장받는다"는 것을 강조한 사실에서 검찰을 보는 정권의 시각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실제 열린우리당 관계자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룰 법안 가운데 검찰개혁 관련 사안들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천 장관 지휘권 발동 이후 평검사들이 '검찰권 훼손'이라며 강력 반발하자 간부들이 나서서 장관의 지휘권은 적법한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며 반발하는 일선 검사들을 적극 만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로부터의 검찰 개혁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의도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의 경우 여권의 도움이 절실한 검찰 수뇌부로선 이번 사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려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대구지검 고위 간부는 "장관의 지휘는 검찰청법상 적법한 사안이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고 총장이 물러날 사안이 아니다"며 애써 의미 부여를 축소하기도 했다.

실제 대구지검 검사들의 의견도 이런 기류에 밀려 상당히 순화돼 대검 수뇌부에 전달되기도 했다. 이는 확대해 봐야 검찰 조직 보호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검찰은 장관이 사표를 제출한 15일 이후 지휘 라인에 있었던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및 검사장, 대검 참모들이 동반 사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됐지만 몰아 닥칠 후폭풍을 우려해 정상명 대검차장을 중심으로 최대한 조직 안정에 나서기로 한 사실도 검찰에 닥친 위기감을 방증해주고 있다.

어쨌든 대통령이 천정배 장관에 대한 재신임 의사를 확고히 했고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천 장관을 옹호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휘권 발동과 총장 사퇴 파문은 검찰 개혁 논란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런 상태에서 검찰은 당분간 심한 외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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