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 교육계 원로를 만났더니 대뜸 "요즘 신문에 나오는 교육 기사가 왜 새로 한다는 것 투성이냐?"고 물었다. 말인즉 예전에는 교육 관련 기사들이 대부분 지나간 일의 잘잘못을 따지고 고치자는 것들이었는데 요즘은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발표가 너무 많다는 뜻이었다. 그는 "교육계란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흔들림 없이 굴러가는 것이 생명"이라며 "너무 잰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때는 교육 현장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굳이 그의 지적이 아니라도 몇 년 사이 교육계를 보면 혼란도 이런 혼란이 다시없을 정도다. 갑작스레 새로운 정책이 황급히 발표되는데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기껏 꼴을 갖춘 정책은 이해 당사자나 반대자들의 비판 속에 오락가락 갈피를 못 잡기 일쑤다. 조금이라도 흠집을 잡히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반성 없이 재탕삼탕 발표되는 정책도 허다하다.
문제는 이같은 일들이 학생과 학부모, 교육 현장에 엄청난 고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3년마다 발표된 2002학년도 대입안, 2005학년도 대입안이 그랬고 2008학년도 대입안은 진행 중인 고통이다. 내신 중심이라든가 수능 등급화, 대학별 고사 규제 따위의 골격만 발표했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대학별 세부 전형 방안은 오리무중이다. 시일을 두고 검토해 내놓는다고 하지만 그 사이에 교육계는 골병이 든다. 학교는 학교대로 시험 출제와 성적 관리, 학생부 정리 등에 진땀을 빼고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매 학기 중간·기말 시험에 목숨을 거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논술을 비롯한 대학별 고사도 어찌 될지 지금으로선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어정쩡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해놓고 사후 심의로 대처하겠다고 하는데, 대학들은 반발 일색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기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사교육에 허리가 휘어지고 어디에 쓰일지도 모르는 공부에 숨이 막힌다.
요즘 교육부가 내놓는 정책은 대개 이런 식이다. 여기에 정부 다른 부처나 교육혁신위원회, 교육관련 기관과 단체 등이 가세하니 교육계에 바람 잘 날이 없다. 17일 하루에만 신학기 시작 시점을 3월에서 9월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교육부 발표와 취학 연령을 만5세로 낮추자는 한 국회의원의 제안 등 새 물건이 나왔다. 내부적으로도 실현 가능성과 여파에 대해 검증받지 못한 것들이다.
미래를 보고, 선진국을 보고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하다. 새로 진행할 정책에 대한 공청회 못지않게 지나간 사안에 대한 비판회도 자주 열려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긴다. 이런 와중에도 교육부는 우리 학생들의 학력이 세계 상위권이고, 경쟁력이 잠재력이 어떻고 따위의 자랑을 제 공인 양 늘어놓는다. 참 민망한 일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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