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의 기쁨이 이렇게 클 줄 미처 몰랐습니다. 직접 길러 거둔 농산물을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얼마나 반기시는지…. 서울에서 놀러 온 친구들은 어쩌다 산에서 송이버섯이라도 하나 찾으면 뛸듯이 좋아합디다."
수원에서 고향인 김천 구성면 상거1리를 오가며 3천여평의 농사를 짓는 김상한(55)씨는 요즘 가슴이 뿌듯하다. 대기업에서 퇴직한 이후 출장식 귀농생활을 한 지 1년6개월만인 올 가을 처음으로 수확의 달콤함을 맛보고 있기 때문.
3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먹고 자며 500여평의 밭에 심은 고추는 풍작을 이뤄 100여근을 땄고, 고구마도 수십 포대나 캤다. 2천300평에 심은 감나무와 석류도 무럭무럭 자라 김씨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않는다.
"농사를 처음 지을 때는 너무 힘들어 한달에 10일 정도 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익숙해지고 결실의 즐거움을 알게 돼 거의 한달 내내 여기에서 살고 있죠."
그러나 김씨가 농약을 거의 치지 않고 호두껍질·잡풀·설탕·우유 등을 발효시킨 액비로 생산한 농산물은 시장에서 살 수가 없다.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그냥 나눠주기 때문이다.
"애써 농사를 지어봤자 돈이 안된다는 농촌 현실은 알고 있었지만 애지중지 키운 농산물이 헐값으로 취급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김씨가 귀농생활을 하면서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 마을에도 생기가 돌고 있다. 특히 6남매를 모두 외지로 보내고 홀로 사는 재당숙모(再堂叔母) 이정희(70) 할머니에게는 든든한 의지처가 되고 있다.
이 할머니는 "큰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무척 적적했는데 조카가 이웃에 있어 든든하고 좋다"며 김씨의 귀농을 반겼다.
귀농 준비를 위해 3년 전 농업전문대학까지 졸업한 김씨는 토담집 등 도시민들이 선호하는 웰빙공간으로 단장하고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관광형 마을을 만들 계획이다.
김씨는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지만 '출장농부'인 남편에게 밑반찬을 챙겨주는 부인 김동숙(51)씨는 귀농생활이 다소 부담스럽다. 마을사람 대부분이 남편 친척이어서 모셔야 할 어른들이고 농사일도 잘 할 수 있을 지 걱정이 되어서다.
그러나 그녀도 '김천댁'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시골로 혼자 떠나는 남편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요. 저도 언젠가는 남편 뜻을 따라야 하지않을까요."
김천·이창희기자 lch88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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