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역사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

며칠 전 동네 앞에 나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수년간 우리 집에 석유를 배달해주는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배달을 올 때마다 아내를 옆에 태우고 장난감 같은 1t짜리 빨간 석유차를 몰고 와서 보일러 탱크를 채워주곤 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뒤, '기름장사'를 하고 있다는 그는 지난해부터 석유배달만 가지고는 생활이 안 돼 영업용 택시를 몰았다. 택시를 운전하다 휴대전화로 주문이 오면 집으로 달려가서 배달차를 몰고 와야 하기 때문에 배달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양해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의 생활이 한눈에 그려져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던 그가, 이날 나를 보더니 회사에 취직했다면서 이제 석유배달을 하지 않는다고 일러주었다. 기쁘기도 했지만 괜히 서운하기도 했다.

"석유배달로는 돈이 안 되지요?"

내가 그렇게 물은 것은 택시기사까지 겸해야 했던 그의 형편이 떠올라서였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의외였다.

"주유소가 아니어서 고객 확보에도 한계가 있고요, 외상하는 집도 적지 않았지요."

석유도 외상거래를 하는가 싶어, 내가 놀라워했다.

"말이 외상이지 나중에 받겠어요? 추운데 보일러는 안 틀 수 없잖아요. 돈이 모자란다고 차를 돌릴 수도 없고요. 사실 한 드럼(약 16만 원)을 넣어줘 봤자 보름밖에 못갈 터인데…그런 집들이 자꾸 많아지네요. "

기름장사를 그만두게 되었다지만 그는 진정한 석유배달원이 아니었나 싶었다.

최근 국감자료에 의하면 대구지역 고교생 중 학비를 못 내는 학생이 10명당 1명인데, 이는 2년 전에 비해 70%가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학비가 석유값보다 우선일 터이고, 학비를 못 내는 가정이 대체로 단독주택에 산다고 추측한다면 겨울 난방비를 '외상'하는 집의 수를 예상할 수 있으니, 앞의 얘기가 과장은 아닐 듯했다.

그런데 이 석유(등유)값의 절반 가까이가 세금이라고 하고, 그 세금이 아파트에 들어가는 도시가스 세금의 3.6배나 된다고 하니, 무엇으로 이 세금 사태를 설명할 수 있을까.

예로부터 세금은 국가와 백성 사이에 놓인 가장 예민한 접경지대(接境地帶)였다. 국가는 군대를 거느리고 각종 내치를 하기 위해 재정을 강화해야 하나 돈은 백성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늘 문제가 되었다. 자영농(自營農)을 활성화시켜 세금을 거둬들이는 균전법(均田法)을 시행한 국가는 번영을 누렸으되, 절차가 까다로운 균전법보다 징세(徵稅)가 간편한 소금과 철에 유혹을 당할 때는 국가는 어김없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한(漢)의 소재(昭帝) 때 곽광은 소금과 철의 전매제를 폐지하여 백성의 어려움을 덜어주어 나라가 번영한 반면, 당(唐)의 말기에는 원가 10전의 소금에 100전의 세금을 붙이다가 나중에는 370전까지 덧붙었고, 그것이 국가 전체 재정의 절반을 차지했다. 국고는 풍성해졌으되 소금에 찌든 백성과 합세한 소금상인 왕선지(王仙芝)의 난을 피할 수 없었다. 1860년대에 일어났던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적인 농민봉기도 삼정문란이라는 징세의 혹독함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세금을 과거와 견주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세금의 민감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각종 간접세로 교묘하게 가려져 있어서 덜 느낄 뿐이다.

지난 국감 과정에서 감세정책을 두고 정부여당과 야당이 많은 설전을 주고받았다. 비대하고 낭비적인 정부지출을 줄여라, 세수부족으로 증세를 해야 한다, 감세를 하여 경기를 활성화시키자, 틀렸다, 감세보다 증세를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국민소득은 더 증가한다, 등등의 논리가 무성했다.

전문가들이 꺼내놓는 조세이론들을 어떻게 다 이해하랴. 그러나 감세니 증세니 하고들 있지만, 석유배달업자의 '슬픈 보고서' 앞에서는 사치스런 논쟁이 아니겠는가.

엄창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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