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낙타가 가는 길은 늘 사막이었다

삶이란 대개 마른 모래벌판에

터벅터벅 발자국을 찍는 일

뛰어봤자 세상은 또 사막이었다

간혹 가다 얻는 한 무더기 가시풀

그 억세고 질긴 요행을 오래 씹었다

입안에 피가 터져 흥건하도록

반추하는 노력의 쓰라린 세월처럼

맨밥은 참 팍팍하고 지금거렸다(중략)

길 없는 길을 가는 낙타는

등에 진 제 육봉이 무덤이 된다

가도가도 끝 모를 길은 사막길

그 길만이 도(道)라고 굳게 믿는

낙타는 제 무덤을 지고 다닌다

임영조(1945∼2004) '사막 3'

수년 전 실크로드 여행길이었다. 나는 늦은 저녁 둔황에서 열차를 타고 밤새도록 투루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바깥은 고비사막이었지만 캄캄한 차창으로는 흐릿한 등불만 비칠 뿐이었다. 나는 쓸쓸한 감회에 젖어서 중국제 포도주 훙깐을 마셨다. 살아온 시간들이 낡은 흑백필름처럼 열차의 유리창에 비치었다. 그런 내 앞자리에 한 시인이 깨어서 앉아 있었다. 임영조 시인이었다. 내가 술을 마시는 동안 그는 줄곧 담배를 피웠다. 이따금 속 모르는 깊은 한숨까지 내쉬었다. 이미 병은 시인의 몸 속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실크로드를 함께 여행을 하고 돌아온 이듬해 나는 부음을 들었다. 임영조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고비사막을 달리던 밤차에서 마주 앉아 멍하게 앉아있던 기억, 명사산의 언저리에 올라서 함께 모래폭풍을 맞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렇다. 삶이란 시인의 말처럼 모래벌판에 터벅터벅 발자국을 찍는 일! 인간은 항시 제 무덤을 등에 지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이동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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