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살아있는 자연의 울림

마음의 귀를 조금만 기울이면 낙엽이 뒹굴거나 귓가에 속삭이는 바람소리를 비롯하여 햇살에 반짝이는 단풍의 울긋불긋한 흔들림의 소리, 그리고 자신의 발자국소리나 주위의 친구들과 주고받는 마음의 소리와 친숙하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특히나 요즘과 같은 바쁜 일상 속에서 이러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가령 길을 걸을 때나 버스 안에서 CD나 MP3를 통해 음악이나 외국어회화에 심취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듣는 음악으로 인해 친구의 반가운 외침도, 주위 나무의 속삭임이나 새의 재잘거림도 본의 아니게 무시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음악회장이나 강의실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길에서나 버스에서도 가능하게 하며 그 외 여분의 시간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인위적인 소리의 무미건조함이 있고 자연의 소리로부터 마음의 귀를 열게 하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없다. 그리고 점차 인위적인 소리에 친숙해지면서 자연과 대화하는 섬세한 정서까지 덤으로 잃고 있다. 즉 호수에 달빛이 부딪치는 소리, 흔들리는 대나무 숲과 그 속에 흐르는 시내의 속삭임 소리 그리고 마음까지 맑게 해주는 솔바람소리. 이러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 마음의 귀를 언제부터인가 잃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소리와 벗 삼아 지냈던 옛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컴퓨터나 음반에 있는 가상의 세계를 벗 삼아 지내며 지식이나 허위적인 겉치레의 필요에 따라 마음이 아닌 머리로 각종 소리와 예술작품들을 듣고 즐기는 경향이 없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울림을 마음으로 느낀다면 그만큼 예술작품을 어렵지 않게 마음으로 음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살아있는 울림을 진정으로 들을 수 있다.

만약에 우리의 몸이 지금 거리를 걷고 있는데 머릿속의 생각은 강의실이나 음악회장의 다른 가상의 세계와 과거나 미래의 어떠한 시간 속에 있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현재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자신의 논리나 감정으로 자연의 울림을 끌어들인다면 진정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있는 자신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의 귀가 현재의 자연으로 열려 있지 않으면 그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 자연의 울림을 느껴보는 여유를 가지고서 자연의 오선지 위에 마음의 음표를 찍어 곡도 만들어보고 합주도 해 보자! 그리고 그 울림 속에서 현재의 자신과 진솔한 대화도 시도해 보자!

김동학(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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