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한글문화에 대한 인식과 우리의 미래

자기 민족과 나라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힘은 자문화에 대한 정신과 인식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한다. 자문화에 대한 정신과 인식이 강하면 문화를 주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빈약하면 그에 비례하여 자기가 속한 민족과 국가의 문화 또한 약화된다는 것이다. 흔히들 21세기를 문화의 세기 혹은 문화전쟁의 세기라고 한다. 이 말은 21세기에 있어서 문화는 곧 국력의 척도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산업, 문화상품, 지적소유권 등의 용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문화 역량이 곧 경제 역량과 상통하는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이전의 산업사회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노동을 자원으로 보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창의력을 원천으로 한 문화를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문화의 잠재력을 간파한 나라는 21세기를 주체적으로 주도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나라는 경제, 정치에 있어서도 약화되어 타국가의 예속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어떠한가?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잣대가 우리 문화 중 가장 창의적이고 우수한 한글에 대한 인식이다.

한글은 15세기 조선조 지배계층의 자국 문화에 대한 무지몽매함 속에서도 수세기를 앞서 간 세종대왕의 문화정신과 인식에 의해 창조되어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 민족 문화의 꽃이요 열매이다. 이러한 한글문화에 대한 인식은 일제 강점기라고 하는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끊이지 않고 조금씩 강화되어 해방 이후 한글 반포 500돌의 해인 1946년에는 한글날을 국가공휴일로 정하여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0세기 말인 90년대 초에는 국가 공휴일이 너무 많아 노동자의 생산성이 떨어져서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에서 제외하였다. 이는 민주주의 토착화와 문화 창달을 부르짖던 전두환 군부 정권이 사실상 가장 비민주적으로 막을 내린 후 그 정권을 이어 출범하여 '빛나는 문화 창조' 운운하던 노태우 정권 시대의 일이다.

세계가 문화산업이니, 문화경제니 문화정치니 하는 개념으로 문화를 모든 국력과 밀접한 것으로 보고, 21세기 발전을 위한 전략의 핵으로 문화를 인식하는 시대에 우리나라 집권자들의 문화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퇴행하고 있었다. 이후 '새로운 문명의 중심에 우뚝서서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는 나라, 신한국 창조' 운운하던 김영삼 정권 시대에도 한글문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 담겨 있는 높은 문화적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겠다던 김대중 정권 시대에도 역시 한글문화에 대한 인식은 회복되지 않았다. 또한 21세기에 접어들어 취임하면서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중심 국가로 웅비할 기회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역설한 노무현 정권에서도 지금까지 여전히 15세기 세종대왕이 가졌던 문화에 대한 정신과 인식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글문화에 대한 우리나라 집권자들의 이러한 인식은 한글문화를 이해한 세계 언어학자들이나, 유네스코와 같은 단체의 한글문화에 대한 인식에도 못 미친다. 20여 년 동안이나 남의 나라 언어인 한글 기념일에 자신이 비용을 부담해서 동료 교수, 학생들, 친지들을 불러 잔치를 할 뿐만 아니라 한글날을 세계 언어학자나 세계 문화 애호가가 함께 공휴일이나 축제일로 기념하는 것이 당연하고 타당하다고 했다는 맥클리 교수를 위시하여 한글을 연구한 학자들은 한글을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요, 인류가 개발하여 온 문자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뛰어난 문자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유네스코에서는 1989년에 세종대왕 탄생일인 9월 8일을 문맹퇴치의 날로 정하였으며 이날 문명퇴치에 뛰어난 공적이 있는 이에게 '세종대왕상'이라는 문맹퇴치 상을 주고 있다. 그리고 세종대왕 탄신 600돌이었던 1997년 10월 유네스코에서는 세종대왕이 창조한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 등록하였다.

이렇게 세계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경축하는 우리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여 정작 우리 국가는 아직까지 한글날을 국가의 경축일은커녕 공휴일에서도 제외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자국 문화에 대한 소극적이고 미약한 인식은 장차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동문고 교사 이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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