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해 오던 보수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며칠 전 1만여 명 사회 원로'지식인의 시국성명에 이어 오늘 오후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침묵에서 깨어나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국민서명운동' 구국 집회가 열렸다.
말 없고 진중한 보수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수층은 '겁 많은' 침묵 세력으로 치부됐다.
아쉬운 것 없고 다치기 싫은 '몸조심하는 부자' 같은 존재, 앞장서서 권력이 싫어할 목소리 내다가 모난 돌이 정(丁) 맞는 꼴 되기 싫은 이기적 계층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고 있다.
보수라고 해서 모든 보수들이 다 머리띠를 매고 길거리에 뛰쳐나오지는 않지만 길거리에 나서지 않았다고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는 뜻도 된다.
지금 참여정권의 진로에 대한 보수세력의 투쟁(비판과 충고) 스타일은 처지에 따라 다른 유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 그런 증거다.의사 A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사회적 신분과 직업에서 얻어지는 소득으로 보면 진보 계열의 눈에는 영락없는 보수다. 가만히 앉아서 환자나 보며 입 다물고 있으면 '보통 보수'이고 나서서 신문에 반노(反盧)성 글이나 써 대고 설치면 '수구골통보수'로 집중 포화를 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보수 단체의 노 정권 비판 행사 집회 후원 광고비를 보내 주기로 용기를 냈다. 보수'진보를 떠나 '나라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송금을 하지 못했다. 그런 곳에 돈 낸다니까 공직에 있는 동생이 펄쩍 뛰었기 때문이다.
"형님 다음달에 승진 심사도 있는데 제발 조용히 있어 주세요." 결국 A씨는 간호사 이름으로 후원금을 보냈다. 투쟁의 용기를 침묵의 방식으로 표출한 경우다. 또 다른 보수의 유형을 보자. 상이군인 정정호(61) 씨, 보수 단체로는 최초로 '강정구를 교수직에서 파면해 달라'며 동국대 총장실을 찾아가 항의했던 상이군경회 대구광역시지부의 회장이다.
그는 1천142명의 상이군경 회원들의 서명을 받아 "북에서 쳐들어와 일어난 6'25 전쟁으로 젊은 나이에 불구자가 되고 전사하며 지켜 온 이 땅에 엄연히 살아있는 국가보안법을 무시하고 날뛰는 강정구를 용서치 못한다"고 항변했다.
같은 보수 쪽이면서 그는 의사 A씨와 달리 이름도 밝히고 투쟁 목표를 공개적으로 찾아 나서서 할 말 다하며 투쟁한 경우다.
정 회장처럼 드러내 놓고 나라 걱정할 수 있는 보수보다 침묵과 몸사림 속에 나라 걱정해야 하는 의사 A씨 같은 보수가 더 많을지 적을지는 알 수 없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보수의 투쟁 방식, 보수 진보의 비율, 좌파'친북 세력의 확산 같은 것보다도 상반된 생각을 지닌 계층 세력 간의 반목과 갈등의 '증폭 위기'다.
지금은 성명서나 TV토론, 신문의 투고, 인터넷에서의 입씨름으로 오가는 시비 수준이지만 갈등이 누적되고 반목이 깊어지면 언젠가 더 큰 물리적 충돌과 마찰로 번질 위험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
8'15 해방 직후와 6'25 전쟁 과정에서 피비린내 나게 겪었던 좌우익의 참극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떤 경우든 그런 이념적 내전(內戰) 상태가 또 와서는 안 된다.
보수 속에도 진보 세력들이 어린 시절 반독재 민주 운동에 몸담고 투쟁한 인사들이 적지 않다. 국무총리보다 부동산이 적은 못 가진 보수도 많다.
그런 보수를 제 것만 챙기는 계층처럼 매도하고 죄인시하는 분위기나 개혁을 꿈꾸는 진보와 좌파를 한풀이 부대인 양 적대시하는 분위기 그 어느 쪽도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못 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어떻게 해야 하나, 늦기 전에 대화합과 범국민 단합으로 가야 한다. 그걸 이끌어 낼 일차적 책임과 힘은 참여정권 지도자에게 있다.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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