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00m의 영덕 창수면 백청리는 영덕군에서 최오지 마을이다. 10월 초면 겨울 외투를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계절이 한발 앞서 가는 마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영덕의 유일한 처녀농군 임은영(26) 씨. 몸집이 다소 왜소해 보여 궂은 농사일을 어떻게 해낼까 싶지만 실제론 영 딴판이다.
그는 올해 전국에서 가장 비싼 복숭아를 생산해 냈다. 포항농산물공판장에서 영천의 복숭아(황도)가 4㎏들이 한 상자당 6천∼7천 원에 거래될 때 임씨가 수확한 복숭아는 무려 2만5천 원을 호가했다.
공판장 중매인들이 임씨가 출하한 산복숭아를 먹어보고는 복숭아 특유의 향 등 맛에 반해 '특급' 대우를 해줬고, 한번 맛본 소비자들의 인터넷 주문이 쏟아져 800그루에서만 1억 원이라는 수입을 올렸다. 올해부터 본격 나오기 시작한 복숭아는 내년에 1억5천만 원, 2007년에 2억여 원의 조수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비결요. 농장 전체가 게르마늄 성분을 함유한 맥반석 토질인데다 서늘한 기후, 유기농법 등 3박자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산 비탈면의 1만5천여 평에서 올해로 4년째 사과·배 등 과수 농사를 해온 임씨는 '영덕 백청 맥반석 산복숭아'가 가장 토질과 기후에 알맞은 작물이라고 보고, 재배면적을 늘릴 생각이다.
임씨는 영덕여고 졸업 후 농촌진흥청이 운영하는 한국농업전문학교 3년 과정을 수료했다. 부모가 평생 일군 농장을 이어받기 위해 일반대학 대신 농업전문학교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한 것이다.
그의 부모는 이 마을에 맥반석 광산을 개발하러 왔다가 눌러앉아 16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경험 부족으로 그동안 실패도 여러 번 한 끝에 농업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딸의 권유로 복숭아를 처음으로 심었다가 횡재를 했다며 딸을 대견스러워했다.
임씨는 '사과된장' 발명 특허를 출원, '맥반석 사과된장'으로 상표 등록까지 했다. 2003년 태풍 매미 때 상품화된 된장 3만㎏을 물에 떠내려 보낸 아픔을 겪었던 그는 "어떤 사람은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져 있었다고도 합디다만, 저는 밤새 된장 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더군요.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약이 올라 또 도전을 한 것입니다."
임씨는 바쁜 농사일 속에서도 영덕군·경북도 4-H 연합회 여부회장, 중앙 4-H 생활개선부장 등 중책을 맡아 활동을 하면서 이제는 경북도 내에 '열성 처녀농군'으로 알려져 있다.
임씨의 농사 지원을 위해 지난해부터 일흔 번이나 백청리를 찾았다는 영덕농촌지도소 남종모(42) 지도사는 "임씨가 복숭아를 재배, 다른 사람보다 4배나 높은 가격을 받았다는 것은 앞으로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사례로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시집요. 가긴 가야 할 텐데…, 그런데 누가 이런 곳에 와서 농사를 지을려나. 짝 좀 맞춰 주세요." 하늘을 지붕 삼아 살고 있는 백청리에 산복숭아 향기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러운 처녀농군 임은영 씨가 있다는 사실은 농촌의 희망과 미래를 말해주고 있다.
영덕·최윤채기자 cychoi@imaeil.com
사진: 영덕군 내 유일한 처녀농군 임은영 씨가 배 밭에서 아버지와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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