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인 취업 박람회 일자리 '바늘구멍'

24일 오전 9시 대구 달서구 신당동 계명대 실내체육관 앞.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노인 일자리박람회' 행사장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노인들은 한 손엔 박람회 안내문, 다른 한 손에는 자원봉사단체에서 나눠준 빵과 우유를 들고 입구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11시, 문이 열리자 노인들은 이력서 대필관과 종합안내관으로 몰려들었다. 면접 및 원서 접수를 위해 즉석 사진 코너를 찾은 노인들의 줄도 길게 이어졌다. 청년 취업박람회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노인들 손을 잡고 종종걸음을 치는 젊은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아버지·어머니, 할아버지·할머니를 도우러 나선 가족들이었다.

이날 하루 휴가를 내고 아버지를 따라 나왔다는 권주영(27·달서구 본리동) 씨. 그는 "아직 일할 수 있는데도 퇴직했다며 아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6군데 정도 이력서를 내 볼 생각"이라고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는 김모(28·서구 비산동) 씨는 "어머니는 '꼭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며 새벽부터 서두르셨다"고 말했다.

55세 이상의 장·노년층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열린 이날 행사였지만 '젊은 노인들'도 가세했다. 경기 침체 여파로 최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여성들이었다.

신순이(52·여.서구 원대동) 씨는 "전자회사 생산직으로 일하다 구조 조정으로 회사를 나오게 됐다"며 "남편이 교통사고로 몸져 누워 반드시 내가 직장을 구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했다.

당초 이날 행사는 87개의 지역 기업과 8개 구·군청, 노인인력지원기관 및 노인복지회관 8곳 등 103개 기관이 참여, 55세 이상의 노인 2천470명을 채용키로 해 관심을 모았다. 때문에 이날 행사는 대구에서 열린 노인취업박람회 참가 인원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행사 주최 측은 이날 1만1천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난 이날 오후, 직장을 구한 노인들은 많지 않았다. 당초 주최 측은 65세 이상 노인을 우선적으로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65세 이상의 노인들을 뽑는 업체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여성복지아카데미 동료 45명이 한꺼번에 박람회장을 찾았다는 박옥수(68·달성군 화원읍) 씨는 "모두들 희망에 부풀어 이력서를 준비해 왔지만 이력서를 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자리 박람회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30년 넘게 해온 화물 운송업을 접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는 권모(58·수성구 범어동) 씨는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운송 물량이 급감, 결국 다음달이면 회사를 나와야 한다"며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었으면 하는데 맞춤형 일자리 알선책은 전혀 없다"고 아쉬워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24일 오전 노인취업박람회가 열린 대구 신당동 계명대. 행사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노인들이 몰려 1만1천여 명이 찾아왔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한 노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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