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개벽은 동학과 서학의 창조적 결합을 전제하고 있다. 서학, 특히 천주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비는 영성체(領聖體)다. 말하자면 '밥'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서학에 나타난 '밥'의 의미를 살펴보자.
대체로'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은 매우 고상한 사람임을 자처한다. 이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늘 우리가 잘 모르는 '하늘'의 이야기를 즐겨 하면서도 나날이 겪는 일용행사인'밥'이나 '똥'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싫어한다. 그런데, 이 고상한 것을 매우 즐기고 밥과 똥을 고상치 못한 것, 천박한 것으로 타매하는 분들의 '하늘 이야기', '예수타령'은 항용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무리 살펴보아도 사람은 밥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위대한 예수께서는 '사람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을 했을까?
그 대답으로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 즉 사랑으로 산다"는 대구(對句)가 만들어 지는데, '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것이 사람이다' 이렇게 말씀한 예수 스스로 그의 전생애를 통해서, 극적인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보여준 것, 또한 처형 직전 - 이른바 지금 이 세상의 '미사'인- '제사' 즉 제사적 식사, 식사적 제사의 그 마지막 밥상 공동체를 통해서 그 분이 자기의 십자가 사건과 자기의 생 전체의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바로 '밥'이라고 불렀던 그 말에서 우리는 진정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수가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고 자기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부여했던 바로 이 '밥'이라는 이름 속에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밥과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랑이라는 영성 또는 생명을 하나로 아울러서 자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밥'"이니 "나를 먹으면 결코 죽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 당시 대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지중해 연안의 문명과 문화, 모든 인간과 모든 종교양식과 생활양식을 지배하던 것은 한마디로 생명 또는 사랑으로 표시되는 하늘과 신과 고상한 것, 정신적인 것 등 이런 것과 반대로 먹고 자고 싸고 살고 등등의 것 사이를 완전히 둘로 갈라놓는 '이원적 분리'였고, 바로 이 이원적 분리가 만들어 낸 틈을 통해서 대로마제국과 그 매판(買辦)인 헤로데와 제사장집단과 같은 무리들이 주변의 모든 소수민족들과 모든 인간과 민중, 모든 중생과 생명과 영토들을 약탈했던 시대였다.
결국 예수 말씀의 참뜻은 실증적인 밥에 대한 인식, 극히 실용적인 '밥'의 관념을 극히 우상숭배적인 하늘의 관념과 함께 거부함으로써 밥의 영성적이면서 현실사회적인 한마디로 생명적인 인식, 통일적인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예수는 말 또는 행적을 통해 우리가 본 일이 없는 어마어마한 천상세계나 하늘에 관한 이야기 따위는 남긴 적이 없다. 다만 내뱉는 '말'과 먹는 '밥'에 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더럽다."
"말이 더럽다", "밥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말이 더럽다" 즉 고상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말 속에 들어있는 '거짓말' 즉 안팎이 다른 '이원적 분리' -하늘과 땅을, 육신과 영혼을, 상부와 하부를, 식사와 제사를, 노동과 문화를, 물질과 의식을 분리해서 보는 이원적인 그 말이 더러울 뿐 아니라 악마적이라는 뜻이다. 반면 밖으로부터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밥은 오히려 생명의 밥 -노동과 영성을, 의식과 물질을, 상부와 하부를, 하늘과 땅을, 식사와 제사를 하나로 아우르면서 악마적인 틈을 없애 버리는, 오히려 '틈에 대한 틈'의 직접적인 실천형태로서의 식사, 즉 '식사적 제사', '제사적 식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새로운 '안식일(Sabbath)'을 선포한 뜻으로 이어진다. 묵은 밥을 먹지 않는 안식일, 새 밥을 먹는 안식일, 새 밥에 섞어서는 안 될 묵은 밥을 버리는 안식일, 만고진리의 생명인 새 밥을 모시는 안식일, 비움의 안식일이며, 참생명이 충만 하는 안식일, 악마의 틈을 메꿔 버리며 생명의 틈을 열어놓는 안식일, 삿된 집착을 내쫓고 순결한 신명이 드러나게 하는 그러한 안식일의 선포였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이삭을 잘라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안식일에 병든 자가 치료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안식일의 주인은 바로 나다"라는 예수의 결정적인 말씀에서 우리는 '안식일'과 '밥'의 깊고 새로운 근원적인 관계와 의미를 읽어야 한다.
예수가 한 말 즉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더럽다"한 것에 대한 실질적인 언급이 공관복음 전체에 도처에 깔려있다. "입으로 나오는 말이 더럽다"하는 뜻은 허구적인 이원적 분리에 대한 비판이며 위선적인 바리새이파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며 탐욕한 부자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형태로 '밥'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그리고 '하늘'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식사와 제사를 따로 보고 있는, 이원적으로 분리된 인식을 하고 있는, 그렇게 해서 악마적인 틈을 만들고 있는, 그렇게 해서 자신의 생명을 끝없이 악마에게 빼앗기고 있는, 악마를 따르고 악마를 살찌우고 있는 -그런 뭇사람에 대해서 "사람은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또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말을 했고, 자기 자신이 '밥'이라고 했고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밥은 똥으로 나오기 때문에 더럽지 않고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더럽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 말들은 결국 당시 율법학자들의 태도, 바로 안식일과 밥을 두개로 따로 보게 하는, 그래서 하늘에 복종 시키는, 그래서 하늘의 이름으로 밥을 가로채 독점하는 이와 같은 수직적·이원론적·위선적인 태도에 대한 공격 즉 '틈에 대한 틈'의 선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수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밥이니 나를 먹고 영원한 참생명을 얻으라"고 함으로써 이원론적이고 수직적이며 위선적인 악마의 틈을 없애 버리고 민중으로 하여금 하늘과 땅, 신과 인간, 삶과 죽음, 제사와 식사, 노동과 문화, 육체와 정신, 활동과 영성이 애당초 하나인 통일적인 생명을 충만하게 체인(體認)토록 하라고 자기 스스로를 송두리째 내어준 것이다. 민중이 자신의 줄기찬 영적 생명활동인 끝없는 소망을 통해 그 소망 자체이며 민중 자신의 생명활동의 결실인 예수 그리스도, 즉 참생명을 다시 그 생명활동의 주체인 자기 자신에게 되돌려 나누어 먹음으로써 악마의 틈을 지워버리고 모든 이원적 분리를 넘어 애당초부터 하나인 통일적인 생명을 충만하게 체인하여 신생(新生)·부활하고 그 생동하는 생명의 새 물결을 사방팔방 시방으로 창조적 노동·창조적 활동에 의해 확대 재생산하며 모든 장애에 저항하여 극복, 더욱 확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밥, 예수로서의 밥, 밥으로서의 예수, 안식일의 선포이며 안식일과 밥의 참된 뜻이다.
이렇게 예수를 이해할 때 우리는 미사의 핵심인 영성체(領聖體)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고 영성체의 의미와 더불어 선의 진정한 본성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지난 시절 자선바자회에 출품했던 달항아리에 써 놓았던 김수환 추기경의 글 한 귀절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니 밥이다" 이 말은 나는 너의 밥이니 네 멋대로 해라. 나는 네 먹이다. 먹을 테면 실컷 먹어보라. 어떤 의미에서 나는 너의 호구라는 뜻과 같다. 이건 얼핏 듣기에 따라서 약 올리는, 긁는 얘기인듯 하지만 본디 깊은 큰 뜻은 남을 위해서 자신의 밥, 즉 밥으로 표시되는 생명활동 자기의 일과 일의 결과 모두를 송두리째 남을 위해서 흔쾌히 내어놓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미사의 정신을 오롯하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를 먹고 나를 기념하는 이 제사를 행함으로써 생명과 평화를 얻어라. 나는 밥이니라." 얘기했던 예수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밤에 십자가를 예상한 바로 그 말씀 -밥과 십자가는 하나이며 밥은 십자가요 십자가는 곧 밥인 -이것이 바로 지렛목이요 촛점이며, 영성체의 핵심이다. 따라서 동서양의 차이는 이러한 근본적인 진리에 접근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특히 역사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민중의 창조적 활동 안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이 하나로 일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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