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전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찬반단체들의 활동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특히 전북 군산지역에서는 유치찬성 단체들이 노골적인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다는 보도(본지 26일자 11면)가 나가면서 경주, 포항, 영덕에서는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발끈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맞대응 주장도 나왔지만 찬성단체에서는 자제와 함께 이를 주민단합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경주에선
군산의 방폐장 유치전 모습을 보도한 본지 기사를 본 김명희(43·경주시 황성동) 씨는 "방폐장 유치의지는 짐작하겠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이런 플래카드를 내걸 수 있나"며 "유치 여부를 떠나 상식이하의 행위"라며 군산 측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특히 군산에 파견했던 관계자들이 보내온 플래카드 사진이 도착하면서 더욱 놀랐다. '경상도에서 반대·찬성파가 밤만 되면 고스톱친다' '경상도에 줄 수 없다 우리도 잘 살아보자' '경상도 문딩이들에게 이젠 질 수 없다' 등등 보도된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것들이 많았기 때문.
경주유치추진단의 김동식 집행위원장은 "경주에도 플래카드가 많이 걸렸지만 군산을 포함한 경쟁지역을 헐뜯거나 거명한 것이 단 한개라도 있으면 찾아보라"며 흥분했다. 용강동 주민 유모(37) 씨도 "그동안 지역감정 조장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맞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지역간 대결로 몰고가는 군산의 전략이 경주쪽에도 찬성세력 결집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보는 시민들이 크게 늘었다.
실제로 군산 측의 이러한 전략은 경주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미 많은 단체들이 지지성명을 냈고 경주에서 반대여론이 가장 강했던 감포, 양남, 양북면 등 원전 인근의 많은 주민들이 최근 유치찬성쪽으로 돌아서는 반대급부가 있기도 했다.
또 군산시가 집중적으로 경주를 견제하고 나서는 데 대해 경주유치추진단 이진구 상임대표는 "선관위도, 경찰도, 반대단체도 유독 경주만 견제하는 분위기"라며 "유치지역 간 비슷한 정도의 탈법이 벌어지는데도 유독 경주만 단속대상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상승 시장과 이종근 시의회의장, 이진구 유치추진단장 등 유치전 지도부는 27일 오후 경주역 광장에서 비상기자회견을 갖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군산 측의 실상을 시민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삭발, 철야농성, 단식 등 초강경 대응책도 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주지역 반대단체는 불탈법과 타락으로 일관되고 있다며 유치전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경주핵폐기장 반대공동운동본부 정준호 대표는 "지역감정을 조장하기는 군산이나 다른 지역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며 "방폐장 유치전에 나선 자치단체장들은 이 같은 갈등을 조장한 데 대해 시민들과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주·박정출기자 jcpark@msnet.co.kr
◆포항에선
26일 오전 8시 포항시 남구 대이동 시청 신청사 앞 삼거리. 출근시간에 맞춰 대이동 청년회원 20여 명이 방폐장 유치 홍보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출근하는 차량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연방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난 21일부터 시작된 홍보활동이다. 이날 포항 13개 동 청년단체 회장들은 방폐장 유치지지 성명을 내고 남은 기간동안 유치를 위해 청년단체들이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시내 곳곳에는 오래전부터 '포항의 미래를 확! 바꿉시다' '포항발전의 새로운 약속입니다' 등의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붙었지만 아직 지역색을 띠거나 자극적인 문구는 없는 편. 김만일(60·포항시 효곡동) 씨는 "그만큼 포항시가 소극적일 뿐 아니라 홍보 전략에서도 타 지역보다 뒤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포항시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실 포항시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침울하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뒤지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시민들의 정서이기 때문. 포항시국책사업추진위원회 양용주 위원장은 "현재 영덕보다는 앞서고 군산, 경주는 곧 따라잡을 자신이 있다"며 "앞으로의 관건은 지역 정치인과 농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장식 시장도 "남은 기간동안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말 깜짝 놀랄 만한 홍보전략이 나올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포항이 안 되더라도 경주나 영덕이라도 된다면 경북동해안이 동반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반대단체들은 유치반대집회와 맨발걷기 시위 등을 통해 대 시민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msnet.co.kr
◆영덕에선
방폐장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서너 사람만 모여도 방폐장 이야기가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범영덕군방폐장유치위와 영덕국책사업추진위 등 찬성단체들은 여론 조사 결과 찬성률이 상승곡면을 그리면서 매우 고무돼 있다. 방폐장 후보지인 축산면 상원리 이장 이교창(64) 씨는 26일 "방폐장이 들어오면 수백년간 선조들이 지켜온 정든 고향을 내놓아야 할 개인적 아픔이 없지 않지만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때문에 기꺼이 감내하기로 했다"며 유치지지의사를 밝혔다.
박경열 범영덕군방폐장유치위 대책본부장은 "출발이 늦어 처음에는 매우 당황해 했으나 최근 유치 유력지역으로 올라설 만큼 지지율이 높다"며 "현재 상승 추세대로라면 아주 희망적"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반대단체 간부들과 회원들에 대한 설득 작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찬성단체들은 "아직도 영덕의 반대자는 고정적으로 15% 정도는 된다는 분석이 나와 이들을 개별 접촉, 영덕의 미래를 위해 용단을 내려 달라"고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고 있지만 지역감정 자극은 자제하는 쪽이었다. '지역 경제 살리는 방폐장, 군산에 빼앗기렵니까'라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한두 번 도로변에 내걸린 적은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밤새 잘려나가고 난 후부터는 아예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 그러나 군산 측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조금씩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박경열(71) 범영덕군방폐장유치위 대책본부장은 "지금까지는 가급적 조용하게 할일만 해 왔는데 군산에서 찬성률을 높이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면서 가만히 앉아 당할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며 "최근 호남에서 발간된 '경상도에 뺏길수 없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신문스크랩 등을 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영덕에서는 26일 오후부터 군산 등지에서 플래카드를 복사한 유인물이 나돌고 있다. 찬성위의 한 관계자는 "군산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만 군민들에게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강구면의 한모(49) 씨는 "주변 이야기로는 4개 시·군 찬성률 여론조사에서 군산이 3위로 나왔다고 하는데 믿기지 않는다"며 "남은 기간동안 어떻게 하느냐가 이번 주민투표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영덕·최윤채기자 cy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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