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낮 대구국제공항 입국장. 짙은 안개 때문에 2시간 정도 연착됐던 중국 선양발 여객기가 활주로 주기장으로 들어섰다.
도착 소식이 전해지자 입국장 CIQ(세관·출입국·검역) 담당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특히 동·식물 검역소 주변은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세계 전역을 강타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와 전국을 뒤흔든 중국산 김치 파동 때문.
하나 둘씩 여행객들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검역원들은 신고되지 않은 동·식물이나 수입 금지 품목이 혹시 있는지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다. 잠시 후, 검은 비닐봉투에 담긴 호두가 검역원들의 눈에 띄었다. 호두는 수입이 금지된 품목. 호두를 갖고 온 40대 남성은 "중국에 살고 있는 약혼녀가 챙겨주는 대로 들고 왔을 뿐"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 남성은 물품의 폐기·환송 동의서에 서명하고 호두를 맡겨둔 채 바쁜걸음으로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농림부 국립식물검역소 대구출장소 황선주씨는 "계절 탓인지 감귤이나 복숭아, 사과, 배 등 생과일을 갖고 들어오는 사례도 많다"며 "이들은 모두 절대 반입 금지 품목"이라고 했다.
대구국제공항의 검역소가 바빠지고 있다. 매주 대구공항을 오가는 국제선은 32편.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상하이, 선양, 칭다오, 베이징, 옌타이 등 중국 노선이다.
모두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 지역인데다 올 하반기에만 말라카이트 그린 검출, 중국산 찐살 유해물질 발견, 중국산 김치의 납과 기생충 알 검출 등 중국산 식품 파문이 확산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것.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대구출장소 김지훈씨는 "중국 동포들의 방문이 잦은 대구~선양 노선의 경우 편당 2, 3건 정도의 수입 금지 축산물이 적발된다"고 했다. 열에 아홉은 소시지와 육포. 지난해 292건의 적발 건수 중 소시지는 87건으로 30%, 돼지고기와 소고기 육포는 197건으로 61%를 차지했다.
오전까지 정적을 유지했던 입국장 분위기는 곧 깨졌다. 태국 방콕발 여객기가 들어선 오후 1시쯤이었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유모(27·여)씨가 고열과 설사를 호소했기 때문.
체온 감지 카메라로 유씨의 이상을 발견한 보건복지부 국립포항검역소 대구국제공항지소 소속 검역원들은 귓속 체온계로 유씨의 체온을 정밀 측정한 뒤 즉시 가검물을 채취했다. 이 과정에서 남편 김모(28)씨가 "빨리 병원에 가야한다"며 가검물 채취를 거부하고 거칠게 항의, 한동안 검역소 직원들이 김씨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올 1월부터 10월까지 검역소에서 발견한 환자는 모두 25건. 이 가운데 비브리오균과 살모넬라균 등에 의한 식중독이 24건이었고 비전염성 콜레라 환자도 1명 발견됐다. 황애주씨는 "조류 독감이 발병한 동남아나 중국을 여행할 경우 반드시 끓인 물과 익힌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특히 손을 깨끗이 씻으면 일반 질병의 70% 이상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도 갖은 욕설과 항의를 하는 여행객들이 종종 목격된다는게 검역원들의 얘기다. 식물검역소 김정애씨는 "인삼이나 송이처럼 흙이 묻어있는 식물을 못 들여가게 막으면 바닥에 집어던지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흙'은 반입 절대 금지 품목. 흙을 통해 각종 병해충이나 오염 물질이 전파되기 때문이다. 또 지난 7월에는 커다란 사슴 뒷다리 고기를 들고 들어오다 제지당한 30대 후반 남성이 갖가지 욕설과 함께 여성 검역원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김지훈씨는 "아무리 여행객들이 화를 내도 계속 설득할 수 밖에 없다"며 "검역을 거부하거나 신고하지 않을 경우 최고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함부로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없어 속앓이만 한다"고 말했다.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올 1월부터 10월까지 축산물 검역 적발 건수는 18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적발건수 261건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다음달 1일부터 대구공항에서 검역 인력을 충원하고 검역감지견이 투입하는 등 조류 인플루엔자 검역 활동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조류독감으로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27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대구출장소 직원들이 대구국제공항에
서 국제선 승객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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