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투명한' 사법철학·정치적 운신 빌미

共和 보수파·히스패닉系 반발 부딪쳐

미국 텍사스주에서 여성으로는 최초의 로펌 진출, 첫 로펌 파트너, 첫 변호사회 회장 등 남성중심의 보수주의 벽을 뚫어 왔던 당찬 여장부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 담당 고문이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지명된 지 24일 만인 27일 스스로 퇴진을 선언했다.

부시 대통령이 판사 경력이 전혀 없는 마이어스를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후 그의 불투명한 사법 철학과 정치적 운신을 문제 삼아 공화당내 보수파들이 일제히 반기를 들고 미국내 최대의 소수 인종으로 자리잡은 히스패닉계도 크게 반발하는 등 마이어스의 행로는 처음부터 험난했다.

놀란 부시 대통령은 마이어스의 능력과 기독교 신앙을 무기로 내세웠으나 보수파의 불만과 의구심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마이어스 고문과 백악관에서 나눈 대화록을 제출하라는 상원 법사위의 요구에 부딪치자 거부의사를 명백히 밝히는 등 시종일관 마이어스를 보호해왔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자진 사퇴하려는 마이어스의 결정을 꺼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면서 대화록 제출을 요구한 상원을 비판했다. 마이어스는 사퇴의 변을 통해 자신의 오랜 변호사로서의 경력이 상원의 인준을 받는데 충분하다고 믿고 있으나 상원이 백악관 대화록을 얻어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물러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초 마이어스의 지명에는 퍼스트 레이디인 로라 부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파워 여성들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시 대통령은 대법원을 판사 출신만이 아닌 다양한 구성원으로 채우길 희망했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왜 마이어스가 종신직으로서 미국의 가치관과 정치·사회·경제적 관행을 규정할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 연방 대법관이 돼야 하느냐는 것을 반대자들에게 설득하는데는 끝내 실패했다.

보수파들은 대법원을 확실한 보수주의자로 채워야 한다는 입장에서 마이어스의 세계관과 법적인 자질을 문제 삼았으며 심지어는 "미국에 108만여 명의 변호사가 있는 그가 대통령과 연줄이 있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게 무엇이 있느냐"고 따지고 들었었다. 마이어스의 낙마는 40% 이하의 지지도로 휘청거리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카트리나 대응, 이라크 반전여론, 리크 게이트 등으로 궁지에 몰린 부시 대통령은 전날 미국 경제의 회생을 자신의 '친 성장주의' 정책의 공적으로 치켜세우며 여론의 반전을 꾀했지만 주요 언론의 관심은 28일로 예상되는 리크 게이트 수사 발표에 쏠려 있다.

심복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기소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 또한 막후 실력자인 딕 체니 부통령도 공모 의혹을 받고 있는 등 부시 대통령을 떠받쳐온 양대기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재선에 성공하면서 사회보장제도 및 세제 개혁, 낙태 반대 법제화 등 야심찬 2기 국정과제를 꿈꿔온 부시 대통령은 마이어스 낙마, 로브의 퇴진 위기를 목도하면서 깊은 좌절감을 맛보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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