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헌헌법 원본조차 보존 못하는 나라

감사원이 국가기록원과 24개 국가기관을 점검한 결과 중요 기록물의 관리가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 1948년 만든 제헌헌법의 원본은 아예 실종상태며, 국가 상징물인 국새의 1차 원본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대통령 기록물 12만여 건의 70% 이상은 사료가치가 전혀 없는 단순 민원신청 내용이다. 나머지도 국가의 중요 정책 추진 배경을 알 수 있는 통치자료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역사적 결정을 담은 자료들이 어디로 증발했단 말인가. 국방부는 대통령 결재 문서 178건 중 중요한 41건을 분실했다. 이쯤이면 마치 근본도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국가의 역사의식 부재, 미묘한 기록의 의도적인 폐기 등이 원인이랄 수 있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처했던 정권들은 훗날 공개를 두려워해 사회적 파장을 낳은 사건과 정책은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았다. 또한 2000년 기록물관리법이 생기기 전까지 공공기록물의 개념조차 머리에 들어있지 않았던 게 우리 정부의 실상이었다. 그러니 공공문서를 사문서처럼 아무렇게나 처박아 놓거나 주요 정책회의가 열려도 으레 기록할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도무지 기본이 안선 기록문화의 부재다. 조선왕조 500년을 완벽한 기록으로 남긴 민족답지 않은 소치다.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모든 영욕의 기록을 소중한 국가자산으로 여기며, 보존을 넘어 적극적으로 열람서비스를 편다. 과거의 거울을 통해 오늘과 내일을 모색하려는 지혜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라진 공공기록물을 되찾아야 한다. 기록의 복원작업도 병행해 '역사의 구멍'을 메워야 할 것이다. 차제에 지방자치단체 또한 공공기록의 중요성을 인식해 자료를 생산하고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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