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부국강병과 인간다운 삶

상앙과 이사가 진(秦)나라 재상으로 등용되면서부터 부국강병책은 본격적으로 추구되었다. 이들 법가 사상가들은 엄격한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어기는 자들에게 혹독한 벌을 가함으로써 변방 국가였던 진나라를 짧은 시간에 열국 중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으로 부상시켰으며, 마침내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하지만 통일을 이루고 나서 제국이 붕괴하기까지의 기간은 불과 14년, 진나라는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 가장 단명한 제국이었다. 유방(劉邦)이 진나라의 수도였던 서안을 점령하고 나서 가장 먼저 시행한 조치는 약법삼장(約法三章)을 발표한 일이었다. 살인, 상해, 도둑질을 제외한 나머지 번잡스런 진나라의 법률들을 폐지한다고 선언하였다. 유방이 건국한 한나라는 BC 202년에서 AD 220년까지 중국 역대 왕조 중 최장수국이 되었다.

진나라 이후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부국강병을 최종적인 국가 목표로 추구하지 않았다. 부국강병책이 역사에서 재등장한 것은 서구 근대초기 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론'에서부터였다. 당시 분열된 조국 이탈리아가 빈번히 외침을 당하는데 분개한 마키아벨리는 부국강병을 최종적인 국가 목표로 삼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추구할 것을 주창하였다.

이상한 일은 중국 고대의 부국강병책은 역사 속에서 잠시 표면에 떠올랐다가 사라져 갔는데 비해서, 근대의 부국강병책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책의 세계관적인 기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가 사상가들과 마키아벨리는 시공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인간은 악한 존재'라고 하는 성악설(性惡說)의 신봉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성악설은 부국강병책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인간을 하나의 욕망 덩어리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면, 삶의 목표는 욕망 충족적인 삶이 되고, 바람직한 사회는 욕망 충족적인 사회를 의미하게 된다. 경제적인 부와 정치적인 권력을 겸비한 국가는 바로 욕망 충족적인 사회의 전형이다. 욕망의 주체로서의 인간 인식은 근대적 세계관의 핵심이며, 이것이 바로 근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국강병이 추구되어온 근본적인 이유이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보고 있으면, 부국강병의 추구가 극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부강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이들에게 인류의 평화나 사랑, 국가 간의 우의나 신뢰 같은 것은 한낱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부강에는 적정선이 없다. 우리나라의 1인당 GNP는 1960년에 79달러에 불과했지만, 2004년에는 1만4천162달러였다. 1인당 GNP는 200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는 부를 적정선에서 멈추어야 할 인간다운 삶의 수단이 아니라 무제한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삶의 목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부국강병을 끝없이 추구하였을 때, 그 끝은 어디일까? 문명의 파국이며 종말이다. 지구생태계는 인간의 탐욕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으며, 경쟁과 분쟁이 날로 심화되어가는 현대의 모습은 아귀지옥을 보는 것 같다.

지금 우리 모두는 부국강병이라는 목표점을 향해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노를 더 빨리 젓는 것이 아니라 키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인류가 타고 있는 배의 키가 '부강'이 아니라 '평화와 사랑'을 가리키게 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구 선생님이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홍승표 계명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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