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18회 매일 여성 한글백일장> 가을 날의 편지

박지연 / 구미여자중학교 1년

내가 5학년때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 잠깐 있었던 적이 있다. 가을소풍 갔을때 갑자기 배가 걸을 수도 없을만큼 아팠는데 맹장염이었던 것이다. 장소가 하회마을이었는데 나는 아픈 탓에 혼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때 누가 내 옆에 앉았다. 제일 친한 친구도 아닌, 말도 한 번 제대로 나눈 적이 없는 다솜이였다. 다솜이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괜찮아? 많이 아프니?"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었을 텐데…. 나는 잠시 아픈 것도 잊고 다솜이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꺼냈다.

"이거 너 먹어."

평소 먹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아이라 금방 먹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너도 먹을 수 있니?" 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속이 안 좋아서 먹기 싫어. 어차피 못먹는 거니까 너 먹어."

"아니야. 너도 먹기는 싫어도 배는 고플텐데…. 나도 아침을 많이 먹어서 별로 먹고싶지 않아."

계속 먹으라고 했지만 다솜이는 먹고 싶지 않다며 결국 먹지 않았다. 곧 다른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러 소나무숲에 왔다. 나는 점점 통증이 심해져서 걸을 수조차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버스에 있으라고 하셨다. 소나무숲에서 버스까진 약 1.5㎞정도 되는 먼 거리였다. 겨우 한 걸음을 떼며 힘겹게 걷고 있는데 다솜이가 헐레벌떡 뛰어 와서는 말했다.

"혼자 어떻게 가려고 그래. 이렇게 먼데! 어서 업혀."

다솜이는 서슴지 않고 등을 보이며 자꾸만 업히라고 했다. 나는 얼떨결에 다솜이의 등에 업혔다. 다솜이는 혼자서 그 먼거리를 혼자 나를 업고 힘들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은채 묵묵히 걸었다.

그 다음날 나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계속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나는 배를 움켜잡고 삐뚤삐뚤한 글씨로 다솜이에게 편지를 썼다.

"고마운 다솜이에게…."

막 편지를 써내려 갈 때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다솜이였다.

"다솜아! 웬일이야?"

다솜이는 정성스레 쓴 편지 한 장과 피자를 보이며 씩 웃었다.

"피자 먹자! 너 피자 좋아한다고 내가 사온거니까 남기면 안돼."

"다솜아 미안한데 병원에서 햄이랑 고기먹지 말라고…."

"으응. 내가 그럴줄 알고 아저씨한테 야채만 넣어 달라고 했어!"

다솜이는 피자를 보여주며 날 보고 방긋이 웃었다. 갑자기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다솜아…!"

다솜이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있잖아… 사실 난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제부터 친하게 지내면 되지. 너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울음을 그치고 다솜이가 사온 야채피자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다솜이가 가고나서 다솜이가 주고간 편지를 읽었다. 종이에 아주 빽빽하게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또다시 혼자 소리 죽여 울었다.

그 후 나와 다솜이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학교가 달라서 만나기 힘들지만 난 늘 다솜이와 함께 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맑은 가을 하늘을 볼 때면 나는 다솜이를 떠올리며 행복한 추억을 그리곤 한다.

"다솜아! 넌 나의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야!"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