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제18회 매일 여성 한글백일장/장원> 편지

김미진 / 칠곡군 석적면

요즘 시대에 덜 떨어지게 컴맹이랍니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인터넷의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여 세상을 구경하더군요. 컴맹인, 문맹인 같이 취급받는 세상이지만, 살아가는데 의사소통하며 지내는데는 전혀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저만의 의사소통 창구가 있거든요. 그냥 창구가 아니라, '정겹고도 따스하며 소박한 창구' 바로 편지랍니다. 여고시절 단짝친구와 오해로 인하여 화해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싸운 적이 있었지요. 밤새 뒤척이고 고민하며 괴로워하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구구절절 띄워보낸 편지가 화해의 매개체가 되어 지금까지도 죽마고우의 우정을 유지하며 지난날을 추억하기도 한답니다. 잠 안오는 밤, 비가 종일 내려 마음이 갈팡질팡할 적엔 원고지를 꺼냅니다. 마음 가는데로 생각나는 이에게 사심없이 띄우는 편지는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로는 대신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지요. 동네 어디서나 모퉁이마다 볼 수 있던 빨간 우체통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추는 걸 보면 다들 무엇으로 의사소통하며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시골에서 평생을 고추와 담배농사 지으며 살아오신 시부모님이 가끔씩 먹을거리를 자루마다 정성껏 담아 택배로 보내주시곤 합니다. 상자를 열면 어김없이 누런 봉투에 담긴 아버님의 짧고도 투박하고 정겨운 편지가 있지요. 내용은 사시사철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야들아 잘있냐? 아-들(손자들)은 잘 있재? 갸(남편)는 회사 잘 댕기재? 묵을거 쪼매 보낸다. 우린 편타."

기승전결 앞뒤 다 잘라버리고 아버님만의 기술로 쓰는 짧은 편지는 늘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당신들의 안부는 늘 끝모퉁이에 붙이시고 몸 구석구석 안 편찮은데가 없으실텐데 늘 "편타" 한 마디로 저희 염려를 일축해 버리십니다. 호사스럽지도 수려하지도 않고, 보리밥에 된장 한 사발처럼 투박스러운 그 편지가 왜 매번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콧등을 찡하게 할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 가슴 밑바닥 깊은 사랑과 자식들 염려의 근심을 제가 가슴으로 읽기 때문이 아닐까요? 꼭 같은 문장을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로 받았을때도 제 콧등이 찡해올까요?

늘 몇년은 다락에서 묵었을 법한 누런 양면 갱지는 정겨움을 더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아버님의 편지글이 새로 나온 꽃편지지에 씌었다면 너무 쌩뚱 맞겠지요? 컴퓨터 자판기로, 휴대전화 문자로 간편하게 뿅뿅 날려 버리면 될 걸 뭘 성가시게 편지지에 편지봉투, 우표까지 사서 우체통을 찾는 수고로움을 자처하냐고요? 이 바쁜 세상에 말이죠. 안동포가 왜 기계로 짠 중국산 포보다 몇곱절이나 비싼지 아시나요? 그건 침침한 눈으로 밤을 뽀얗게 새워가며 한 올 한 올 베틀을 온 몸으로 안고 북을 밀고 당기며 베를 짜는 그네들의 인내와 정성때문이 아닐는지요? 빠르고 간편한 것이 실속있고 좋지만은 느리고 더딘 것이 결코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것은 아닌것 같군요. 안동포가 기성포보다 몇 배 비싸도 늘 귀하고, 편지글은 언제라도 주고받는 마음이 정겹고 따스하니까요. 정성어린 한 줄의 편지가 그 흔한 인터넷 상의 스팸으로 처리될 일은 없겠지요?

금오산 자락에 가을 기운이 세세히 느껴지는군요.

이 가을 그리운 이가 있거들랑 미처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말 한 마디 있거들랑 진솔한 마음 자락을 원고지에 절절히 펼쳐 보는건 어떨는지요?

한 층 가을 빛이 곱고, 따스하게 느껴질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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