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아름다운 밥상

보통 남편들은 아내가 그릇 사 모으는 것을 보면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부엌이나 장식장에 그득 쌓인 그릇을 보며 혀를 차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반대다. 마음에 드는 그릇을 보면 아내보다 내가 못 참는다.

총각시절 하나 둘 모은 그릇을 신접살림 준비하며 펼쳐보니 금세 부엌이 가득 찼다. 하지만 아내는 쓰지 않 겠다고 했다. 아끼는 것이라 부담스럽고 분청그릇은 무거워 설거지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결국 내 그릇들은 창고로 들어가고 아내는 얇으면서도 잘 깨어지지 않는다는 유명 브랜드의 그릇을 세트로 사왔다.

내가 유독 그릇을 많이 모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도자기가 흔한 나라여서 그런지 제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그릇이라도 그리 비싸지 않다. 회화에 비하면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에 좋은 작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릇은 항상 밥상에서 가까이 만날 뿐 아니라 손끝에 전해지는 질감하며 입술에 닿는 감촉까지 즐거움을 주는 요소가 한 둘이 아니다. 더군다나 분청은 형태와 표현이 자유로워 '세트'의 개념이 필요 없다. 그래서 여러 가지 스타일의 그릇들이 한데 어울려 밥상의 다양한 표정을 연출해 낸다.

얼마 전 아내는 주인의 안목이 돋보이는 정갈한 밥상을 받곤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그릇과 음식의 하모니가 만들어 내는 그림 같은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동안 쓰던 그릇을 조용히 창고에 넣더니 무겁다던 그릇들을 스스로 꺼냈다. 패스트푸드점의 일회용 포장과 무표정한 밥상에 익숙하던 그녀가 새삼 밥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미술은 작가들에게만 존재하고 전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활의 아주 사소한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내 손 닿는 곳에서 시작하는 아름다움의 발견과 실천은 그 어느 대가의 작품을 가지는 것 보다 훨씬 더 소중한 일이다.

이두희· 경주아트선재미술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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