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셰익스피어 / 장원재 등 13명 지음 / 씨네21
일찍이 토머스 칼라일은 말했다. "인도는 포기할 수 있어도 셰익스피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리고 그로부터 150여 년 뒤 알 파치노는 주장했다. 이제 셰익스피어는 할리우드 것이라고.
윌리엄 셰익스피어. 가장 널리 읽히는 이야기를 지어낸 인류 최고의 이야기꾼인 그를 탐구해 쫓지 않더라도 그가 수백 년 전에 창조해 낸 주인공들의 이름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 한자리에 '교양'으로 새겨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에 대한 깊이와 일치하지 않는다. 제목, 줄거리, 주인공의 이름을 기억할 순 있지만 셰익스피어 작품의 참맛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필름 셰익스피어'는 영화, 문화평론가, 연극연출가, 여성학자 등 13명이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등 셰익스피어 원작의 영화들에 대해 논한다. 필자들은 그의 이야기 속에는 시대와 문화권을 넘나들며 자체적으로 진화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는 증거를 포착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소수의 전문가들을 위한 박제된 예술가로 남겨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를 박물관에서 끌어내 그의 작품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그들은 영상 매체가 지닌 놀라운 문화 전파력에 눈을 돌린다.
영화는 언제나 셰익스피어를 탐했고, 그렇게 해서 영화는 가장 적극적으로 셰익스피어를 담아온 매체가 됐다. IMDb(The Internet Movie Database)의 조사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라는 작가의 원작을 각색한 영화는 603편에 이를 정도다.
셰익스피어의 극은 인간이 작품의 소재이고 도구이면서 또한 주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연구대상이다. 그중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런 매력이 많은 영화인들로 하여금 그의 원작을 토대로 한 다양한 버전의 영화 만들기에 도전토록 해왔다. 원작과 영화의 틈, 필자들은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영화인들이 채워 넣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동시대의 해석이자 주석이라고 본다.
가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자. 1968년 프랑코 제리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줄리엣이 드라마의 주도권을 쥔다. 줄리엣의 모습에 반해 첫눈에 사랑을 느낀 사람은 로미오지만 그 사랑이 극적인 관계로 반전되는 계기를 마련한 사람은 붉은 정열의 집안, 캐플릿 가의 딸 줄리엣이다. 줄리엣은 능동적인 인물로 제시되고 로미오는 오히려 부드럽고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속의 관습적인 남녀 역할이 제리렐리의 영화에선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반면 1996년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줄리엣'에서는 화려한 붉은 색 옷을 입고 눈부시게 노란 스포츠카를 타고 등장해 싸움을 거는 사람은 로미오 집안인 몬태규다. 루어만의 영화에선 로미오의 집안이 정열적인 반면 줄리엣의 집안은 정적으로 제시된다. 동적이고 적극적인 인물로 드라마를 끌고가는 것도 로미오다. 남녀의 관습적인 역할인 남성은 능동적이고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할리우드의 공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어찌 보면 90년대 영화가 60년대 영화보다 더욱 보수적인 보기드문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필름 셰익스피어'는 그간 주목받았던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비롯해 그 외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희곡들 중 영화화된 작품들을 선별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셰익스피어를 만나는 계기를 제공한다. 현대의 수많은 영화들에 '셰익스피어의 그림자는 과연 얼마나 드리워져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영화들이 간 길을 쫓는다. 원작과 꼭 닮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것과 유사성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려운, 셰익스피어 원작을 적극적으로 변용한 영화들도 소개된다. 이 책은 현대의 대표적 예술 장르인 영화로 우리가 엘리자베스 시대와 현대의 시간적 간극을 적극적으로 조율하며 셰익스피어를 만나는 지름길을 알려준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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