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군사기지 반세기, 도심 한가운데가 죽어간다

대구 남구에 미군이 주둔한 지 올해로 만 55년. 1916년부터 해방까지 일본군 80연대가 주둔하다 1950년부터 미군이 본격 자리를 잡았다. 대구시 경계가 달성군까지 확장, 미군 주둔지가 이미 도심이 된 지 오래인데도 미군 기지 인근지역만은 '변화'와 '발전'이란 단어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미군들이 '달러 분출구' 역할을 상실, 주변 상권은 죽어가고 있고 군사기지 주변의 각종 규제 때문에 인근 도시개발은 꿈도 못 꾸는 상태.

때문에 "이제는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주민들과 남구청은 물론, 일부 지역 국회의원까지 이 같은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서울 용산 및 부산 서면의 미군기지 이전 또는 폐쇄확정 속에 "왜 대구만 안 되나"라는 불만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침 28일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대구 도심 미군부대 이전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해 앞으로 대구기지의 이전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죽어가는 상권

캠프헨리 주변에서 30여 년간 의상실을 해 온 김모(54·남구 봉덕3동) 씨. 그는 "장사를 접지 못해 문만 열어놓고 있다"고 한숨 쉬었다.

"1970년대 의상실을 낼 때만 해도 인근에 15곳 정도의 의상실이 있었어요. 대단했지. 그런데 이제 우리 가게만 남았어요. 장사가 안 되니까 모두 다 접고 떠났지. 그는 "장사가 잘 되리라는 기대를 완전히 접은 때가 벌써 10년 전"이라고 전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15곳이 넘던 기지 인근 외국인전용클럽은 지금 5곳으로 줄었다. 그나마 문을 닫는 때가 많다. 업소 관계자들은 "국내물가가 크게 올라, 미군들이 더 이상 '맘 놓고 쓸 형편'이 안 되는데다 9·11 테러 이후 야간 부대 외출도 제한돼 미군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캠프워커 인근인 봉덕동에 살았다는 주민 이상봉(46) 씨는 "미군 부대가 있어 인근 상권이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상권도 활력을 잃었다"며 "상권 유지도 못해 주는데다 개발규제까지 받으니 주민들로서는 이만저만 고통이 아니다"고 했다.

△도심성장의 장애

남구에는 캠프 헨리(Camp Henry·이천동), 캠프 워커(Camp Walker·봉덕3동, 대명 5동 및 9동), 캠프 조지(Camp George. 대명2·8동) 등 3곳의 미군기지가 있다. 이들이 차지한 부지는 모두 29만9천500여 평. 남구 전체 면적의 약 5.7%. 남구에 앞산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남구의 '알짜땅' 대부분을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는 셈.

김흥수 남구청 기획감사실장은 "부대가 처음 주둔할 당시에는 이곳이 변두리였지만 도시가 팽창하면서 기지가 도심이 됐고 결국 도심 한가운데 개발 공동화가 빚어졌다"고 했다.

캠프 헨리와 캠프 워커 동쪽(봉덕동) 인근은 도시계획상 2종 일반주거 지역으로 15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지만 캠프 워커 서쪽(대명동)은 헬기장으로 인해 7층까지만 가능하다. 기지주변의 규제에다 헬기장 소음까지 겹쳐 주거지로 선호되지 않고 개발하겠다며 나서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커지는 이전 요구

대구시와 남구청은 내년 말까지 주한미군이 캠프 워커 내 H-805 헬기장과 A3 활주로 등 2만3천여 평을 우리 정부에 반환키로 해 구청 청사이전과 3차 순환도로(길이 700m, 폭 40m)를 만드는데 활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도시의 활력을 되찾고 '제대로 된 도심 개발'을 위해서는 기지이전만이 해결책이라는 것.

도심의 미군기지 이전은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서울 용산기지가 2008년 평택으로 옮기고, 부산 서면 하얄리아 기지도 폐쇄가 확정됐다. 대구 미군기지 이전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미군기지되찾기시민모임 김동옥 사무차장은 "지역발전을 위해 기지를 꼭 이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서 대구 미군기지 이전을 촉구한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실 박영찬 보좌관은 "대구 미군기지는 군수지원 부대인만큼 도심에 있을 필요가 없고 이 부지를 새로운 주거시설로 전환하면 직접적인 경제유발 효과만 약 4조 원에 달해 기지이전비용(1조~1조5천억 원 추산)을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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