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평준화와 이율배반

기자는 뉴스를 다루는 직업 특성상 새로운 소식을 보통 사람들보다 빨리 접한다. 분량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참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교육 관련 뉴스다. 변화보다 안정이 더 비중을 갖는 분야인 만큼 일 년 내내 돌아가는 모양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묘하게도 건드리면 뉴스가 되는 게 교육이다. 교육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한 번 제기됐던 문제라도 방향만 조금 바꾸면 기사가 된다. 늘 존재하던 현상이라도 조그만 계기만 있으면 재탕 삼탕 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며칠 전 고교 평준화에 대한 연구 결과 소식이 거의 모든 언론을 장식했다. 평준화 지역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에 비해 모든 영역에서 학업 성취도가 높고, 고교 3년 동안의 학력 향상 정도에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사교육비는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 수준, 지역 등의 변수를 빼고 보니 비평준화 지역이 오히려 더 썼다는 분석도 덧붙여졌다.

평준화 기조를 유지하려는 교육부나 평준화 지지론자들의 입장에선 쾌재를 부를 뉴스였다. 그러자 곧바로 분석 자료의 제한성이나 특정성 등을 들어 의미를 축소시키는 평준화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담은 반격이 이어졌다. 연구자들에게 지역·학교별 학력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는 주장도 뒤따랐다.

어찌 보면 새로운 소식들인 듯도 하지만 결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평준화에 대한 연구 결과는 찬성론에 맞든 반대론에 맞든 번이나 나왔었다. 후속 보도 역시 탁구공을 치듯 오고가는 모양이 달라진 게 없다. 오죽하면 "내년엔 또 평준화가 잘못 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올 테니 두고 보라"고 장담하는 이가 있을까.

문제는 이런 일련의 행태들이 국민의 시각을 두 쪽으로 나누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할 빌미를 줌으로써 국민의 인식을 혼란에 빠뜨리고 상식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현실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큰 아이 공부가 뛰어나면 수월성을 강조하는 쪽에 섰다가, 작은 아이 공부가 좀 모자라면 평등을 부르짖는 쪽에 서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어제까지 서울대가 나라 망친다고 욕하다가, 서울대가 이제 겨우 세계 100위권 대학에 진입했다는 소식에 나라가 어찌 될 거냐고 개탄하는 이율배반이 또 이를 증명한다.

이러고 보면 외환 위기나 월드컵, 대통령 선거 따위의 굵직굵직한 뉴스들이 언론을 휩쓸어 굳이 변화가 느린 교육 분야에 눈길을 줄 필요가 없던 예전이 속편했다는 자조도 나옴직하다. 하지만 이제 교육은 어지간한 이슈로는 누르기 힘든 거대한 뉴스원(源)이 됐다. 사건사고와 무관하게 재탕 삼탕 뉴스를 재생산하는 메커니즘까지 갖췄다.

결국 기대할 곳은 교육계 내부밖에 없다. 정책 입안자부터 현장 교사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견지해주길 바랄 수 있을 뿐이다. 언제 평준화라고 해서 더 가르치고, 비평준화라고 해서 덜 가르쳤던가.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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