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쌀 쭉정이 모임

지난달 30일 낮 12시 국회 앞 여의도 한 식당.

권오을 도당 위원장(안동)을 비롯한 이상득(포항남·울릉)· 이상배 의원(상주) 등 한나라당 경북 국회의원 14명 중 9명이 모였다.

쌀 관세화 비준동의안에 대한 농민 분노,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유치, 기초의원 선거구 조정 등 시급한 지역 현안 앞에 '경북의 여당'으로 불리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고민을 털어놓고 뜻을 모은다며 마련한 자리였다.

민감한 현안이 적지 않음을 의식한 듯 모임도 비공개로 했다. 하지만 1시간 남짓 모임 뒤 권 위원장이 브리핑한 내용은 기대 이하였다.

권 위원장은 방폐장과 관련해 "인기투표로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직무를 포기하는 처사"라고 했고, 쌀 관세화 비준동의안에 대해선 "농민들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구 조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방자치법 취지가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권 위원장 스스로 "특별한 내용은 없고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알맹이가 없는 원론만 나열한 수준이었다.최근 성난 농민들은 한나라당 경북도당을 일시 점거했고, 벼 야적투쟁과 쌀협상 국회 비준 저지에 총력 태세로 나서고 있다.

또 2일 예정된 방폐장 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에 경주·영덕·포항 등지 주민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 일부 기초 단체장은 삭발까지 했다. 선거구 조정 문제는 경북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경북의 지역구 15석 중 14석을 독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뒤늦게나마 지역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날 모임은 "모였다"는 자체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시급하게 돌아가는 상황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모임 후 의원들이 남긴 것이 "왜 모였을까?"하는 의문이었다면 기자의 지나친 과소평가일까.

이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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