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차례에 걸쳐 식사와 제사의 관계, 즉 '밥'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휴식과 노동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일과 놀이'의 관계, 그리고 '일'과 '춤'의 관계, 그리고 일과 춤에 있어서 그 기초가 되는 '신명'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
오랜 역사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과 놀이는 분리된 것으로, 일과 춤은 서로 다른 것으로 통용되어 왔다. 그래서 일은 춤과 아무 관계도 없는 생계노동일 뿐이며 춤은 생계노동 따위의 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매우 고상한 또는 매우 즐거운 하나의 오락이요 휴식이요 예술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한 인간에 있어서도 일과 춤은 분리되었으며, 한 사회와 전체 인간세계에 있어서 집단적으로도 똑같이 일과 춤은 서로 다른 것으로 분리되어 왔다. 일은 인간의 노동·경제활동, 밥 먹는 활동·돈 버는 활동 또는 세속적인 모든 활동을 의미했으며 반면 춤은 일반적으로 예술·문화, 영적인 여러 가지 활동 또는 휴식·여가·오락 또는 제사와 관련을 맺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리고 일은 외적인 것으로 육체적인 일이요, 춤 또한 육체적인 것이긴 하나 그 동기는 내적인 것 또는 매우 신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일을 하는 사람은 일만 하고 춤추고 노는 사람은 춤추고 놀기만 하는 그러한 세상으로 분리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또 일하는 사람이 춤을 추고 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주로 춤을 추고 노는 사람들이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 일은 죽도록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저 시늉하는 정도로 하나마나한 그러한 분리현상이 오랜 역사를 경과하면서 현대에 와서는 분리현상 자체가 특징적인 것으로 고착되어 버렸다.
이제 놀이와 춤은 전문예술가들에 의해 하나의 문화양식으로 발전했고, 일은 절대다수 민중이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예술사 또는 예술사회학에서는 예술의 기원을 '노동 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과 '예술 의욕설'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대체로 크게 두 갈래로 분리되어 왔다. '노동 기원설'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문화와 예술은 실용적인 필요에 따른 원시인들의 노동활동으로부터 노동대상과의 접촉을 통해 발생한 실용적 양식일 뿐이라는 것이며, '예술 의욕설'은 대체적으로 노동과는 관계없이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어떤 표현욕구, 어떤 신비로운 마음의 움직임에 의해서 예술과 문화가 발생하고 발전해 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예술도 노동도 모든 문화 활동이나 인간의 생산 활동은 기실 두 개의 다른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인 생명의 이러저러한 표현이요 활동양상에 불과하다는 믿음에서 본다면 노동 기원설이나 예술 의욕설은 둘 다 일면적일 뿐 본래는 하나라는 결론에 미리 도달할 수 있다.
일체의 인간과 인간의 내적 활동이나 외적 활동이나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이거나 사회적인 활동이거나 간에, 또는 인간 이외의 일체의 우주 삼라만상과 그들의 변화 그리고 인간의 생각의 변화, 눈에 보이지 않는 일체의 존재하는 것, 또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것 -일체의 것은 하나의 총체적이고 통일적인 기(氣) 즉 생명인데, 이러한 생명은 쉴새없이 변화하고 쉴새없이 일하며 쉴새없이 순환하고 운동하고 자기 스스로를 외화(外化)하는 (밖으로 내보내는) 노동으로서도 나타나고, 표현으로서 즉 예술로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노동과 예술은 그 기원에 있어서 이미 하나요 근원적으로 하나이며, 지금도 하나요 앞으로도 하나여야 한다.
이 세상 살아 생동하는 모든 것은 일하며, 이 세상에 살아 생동하는 모든 것은 춤을 춘다. 몸도 마음도 인간도 삼라만상도 다 일하며 춤추고 춤추며 일한다. 일과 춤은 이러한 살아 생동하는 모든 것의 존재 또는 활동양식의 두 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일은 한울인 생명 자신의 존재규정이며 천변만화하는 존재로서의 생명 자신의 존재규정이다. 춤은 한울인 생명이 역시 천변만화하며 생동하는 생명 자신의 활동규정이다. 활동이 바로 존재이며 존재한다는 것은 곧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생명은 일함으로써 춤추며 춤춤으로써 일하는 것이다. 춤은 모든 예술의 기원이다. 모든 예술의 기원 ? 문화의 기원은 춤이며 또한 일이다.
춤은 근원적인 활동이며 생명의욕의 근원적인 표현이다. 일의 주체는, 누가 일을 하는가 할 때 일을 하는 것은 생명이며, 누가 춤을 추는가 할 때 춤을 추는 것은 계속해서 우리 안에서·밖에서 활동하고 있는 생명이다. 생명은 다른 말로 '신명'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신명이 바로 일과 춤의 주체요 근본이다. 신명이 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고 신명이 나지 않으면 춤을 출 수 없다. 신명이 나지 않는 일은 노예노동이며 강요된 노동이다. 신명이 나지 않는 춤은 억지춤이며 울며 겨자 먹기 춤일 뿐이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본래 하나요 본래 한 생명의 이러저러한 활동이듯이, 예술과 노동도 본시 하나의 생명활동이다. 일과 춤은 본시 한 생명의, 한 신명의 활동인 것이다. 노래와 시 또는 그림 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작 또는 공동작을 막론하고 예외없이 모두 다 바로 이러한 춤추는 신명·일하는 신명 또는 신명의 '일춤'·신명의 '춤일'의 활동 또는 운동하는 리듬을 기초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한울이 한울을 먹는" '먹이사슬'의 끊임없는 순환·역동으로서의 경제·창조·생산활동 역시 하나의 생명체가 타 생명체에 대해서 역동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통해서 생명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즉 일체의 노동활동·생산활동도 결국은 이와 같은 신명 또는 생명의 의욕으로부터 분출되어 나오는 활동인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일의 질적인 장점, 즉 일이 질적으로 절정에 달한 것이 춤으로 나타난 것이며, 춤이라는 것은 질적으로 높아지고 깊어지고 더욱더 넓어진 일, 즉 넓어진 생명활동의 새로운 시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춤이 일로, 일이 춤으로 서로 상승하는 생명활동의 확대재생산 과정의 시작과 그 매듭을 이루는 부분을 우리는 '굿'이라고 부른다. 일의 결과인 밥이 사람에게 돌아오거나 또는 돌어오게 하는 것, 또는 더 큰 힘으로 (즉, 더 큰 의욕으로) 그리고 더 큰 일로 (즉, 더 큰 노동으로) 생명이 확대재생산되도록 하며 여기에 어떤 장애가 있을 때에는 이 장애에 저항하고 그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계절이나 육체의 율동이나 생각의 천변만화와 똑같은 일체의 생명순환의 질서에 합일해 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굿'이라고 부르는 '일춤' 또는 '춤일'일 것이다.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무당이 발생하는 과정이나 제정일치시대에 있어서 제사장 곧 임금의 발생과정 등은 춤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춤의 독점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춤을 일에서부터 분리시키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춤을 일로부터 분리시켜서 춤을 독점하고 굿을 독점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을 통제하고 일과 일의 결과를 또한 약탈하는 그러한 것은, 제사와 식사를 분리하고 현세와 내세를 분리시키며 하늘과 땅을 분리시키고 신과 인간을 분리시켜서 그 사이에 제상을 놓고 현세적인 모든 인간활동·생명활동의 결과와 생명활동 자체인 '밥'을 내세의 하늘 또는 미래주의적인 환각과 '목적의 왕국' ·'천당'으로 표시되는, '종이 한울님' 즉 우상에게 갖다바침으로써 제상으로 만들어지는 '틈'을 통해서 그 밥을 가로채고 계속 지배를 강행·강화하여 왔던 이제까지의 모든 마귀들의 독점의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와 같이 춤의 독점·놀이의 독점, 일과 놀이의 분리·일과 춤의 분리를 통해서 굿을 독점하고 굿의독점을 통해서 일과 일의 결과와 일의 확대적인 전개를 통제·독점하는, 그렇게 해서 지배를 강화하는 바로 이러한 마귀짓에 대해서, 본래 생명 그 자체의 근원에 있어서 하나이고 총체적이고 통일적인 생명활동의 한 표현인 춤과 놀이를 통일시키는 새로운 굿에 의해서 굿의 독점·독점된 굿에 대하여 이것들을 무화시키는 것, 무산시키는 것이 바로 '마귀들의 틈'에 대한 '생명의 틈'·'민중의 틈' -이 틈을 열고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독점과 이원적인 분리에 저항하여 진정한 춤·진정한 일의 통일을 실현시키려면 민중들의 '대동굿'을 통해서 마귀들의 '독점굿'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굿에 의해서 굿에 저항하고 '민중굿'에 의해서 '마귀굿'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대동굿을 통해서 굿독점과 춤독점과 밥독점과 놀이독점과 그리고 모든 이원적인 분리를, '틈'을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다. 틈을 없애버리는 활동인 살아 생동하는 '틈의 개방'·'틈의 개벽'이 바로 굿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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