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부지선정이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로 선정됨에 따라 지난 19년간 표류해왔던 대표적 국책과제의 해결에 한 획이 그어지게 됐다.
특히 국책사업중 대표적인 난제중의 하나였던 방폐장 선정을 투표를 통해 주민의 뜻으로 결정하도록 했다는 데 이번 선정은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적 과제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고 주민이 투표로 최종 결정함으로써 중대 현안에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방폐장 선정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투표 결과에 대한 '승복' 등 깨끗한 뒷마무리가 중요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주민투표 기간에 보였던 과열 양상으로 인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반목과 방폐장 건설 반대 여론 등이 쉽게 정리될지는 미지수여서 방폐장 건립이라는 최종 목표까지 가는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부지 선정 이후 민심 수습 등 해결해야할 과제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 요망되고 있다.
◇ 방폐장 선정 과정과 의미 = 방폐장 부지선정 작업은 1986년부터 시작돼 경북 영덕, 울진, 충남 안면도, 전남 장흥, 경북 울진, 굴업도 등을 대상으로 19년에 걸쳐 9차례나 추진됐으나 모두 실패해 현재에 이른 난제중의 난제였다.
방폐장에 대한 거부감이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와 소요 등을 통해 선정작업이 번번이 무산됐던 것이다.
방폐장 부지 선정에 주민투표를 도입한 것은 정부가 그동안 국책사업의 실패가 이같이 국민 동의를 얻지 못한 데서 비롯됐음을 인정한 결과로 안전성 보장, 절차적 민주성 확보, 유치지역 지원 법제화 등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했다.
정부는 2003년 부안 폭력사태 후 주민 찬성없이는 방폐장선정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중앙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에서 벗어나 절차적 민주성을 확보했다.
방폐장에서 처리되는 폐기물을 원전, 병원 등에서 사용한 의복, 장갑, 의료기기 등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로 제한해 시설 안전성을 높였다.
또한 3천억원 특별지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양성자가속기사업 지원 등 유치지역에 대한 대폭적인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고 이를 법제화함으로써 유인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방폐장을 기피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이 유치를 신청했으며 지역 내부에서도 유치 찬성 비율이 반대 비율을 능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방폐장 부지선정 절차는 대의민주주의와 주민투표라는 직접 민주주의를 복합시킴으로써 이중으로 주민의사를 묻는 방식을 택했다.
1단계로 지방자치단체장은 중앙정부에 방폐장 유치신청을 하기 위해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했으며 2단계로 주민투표를 실시해 찬성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 부지로 선정되도록 했다.
방폐장 유치에 대해 지역주민의 찬반 논란이 뜨거운 만큼 주민의 의사를 묻는 2중의 장치를 뒀다고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표류해온 방폐장 건립이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부지선정에 성공해 현실화 되면 주민투표는 새로운 국정운영 방식의 모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 방폐장 건립 전망 = 그러나 이런 제도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방폐장 건립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순항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지는 속단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핵반대 시민환경단체들의 방폐장 건설 반대가 여전한 가운데 방폐장 부지를 지역간 경쟁구도에 의해 선정하는 절차를 밟은 결과 유치경쟁이 과열돼 부정, 탈법 시비 등이 잇따르는 등 후유증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들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4개 지자체가 투표 및 찬성률을 높이기 위해 부재자투표를 독려한 결과 부재자 신고율이 이례적으로 20-40%에 이르렀고 핵반대단체들은 이를 허위.대리 신고, 금권.관권에 의한 불법 선거라며 선거무효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벼르기도 했다.
부재자 신고율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높게 나오자 선거관리위원회, 경찰, 관계부처는 대리투표 등 부정선거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부재자투표소 97개를 설치해 거소가 아닌 투표소 투표를 유도했고 부재자 신고서 25만장을 조사해 807매의 흠결을 발견한 뒤 투표용지를 발송하지 않기도 했다.
이런 과정으로 볼 때 패배한 지역의 투표 결과 불복 사태나 지자체간 또는 방폐장 건립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등의 소송제기 등으로 방폐장 선정이 다시 표류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 경우 새만금 간척사업 등 소송과 갈등으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은 다른 국책사업들 처럼 방폐장 건립도 진통을 겪으며 국가적 에너지만 낭비할 수도 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찬성률 1위를 기록한 경주와 다른 지역과의 격차가 커 탈락한 지자체가 반발하더라도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이다.
◇ 남은 과제 =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들을 인식, 민심수습 방안 등 부지 선정 이후의 대응책 마련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중앙정부, 지자체, 주민, 환경단체 사이에 새로운 갈등 조정 모델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이번 방폐장 부지선정과 향후의 건립작업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원만하게 진행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따라 탈락한 지자체에 대한 지원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것이 선례가 돼 다른 사업에도 미칠 영향이 부담이 되고 있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결과에는 승복해줘야 한다"며 "정부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가 선정됨에 따라 향후 이 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고준위 방폐장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 이후 고준위 방폐장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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