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의 재선 완패와 그로 인한 내홍으로 벌써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재선 결과가 나온 직후 노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그럴싸한 정치적 제스처를 내보냈지만,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의 의중과는 딴판으로 흘러갔다. 대통령이 당을 떠나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친노파들이 대통령 비호에 나서고 있지만, 그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나설지는 의문이다.
이미 당과 대통령의 관계는 시간게임에 들어간 단계로 보인다. 노 대통령과 동거가 가능한 사람이 열린우리당에 과연 몇이나 될지. 여권의 차기 대권 후보로 거명되는 사람들도 정서적으로 정책적으로 잘 맞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대통령과의 철저한 결별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노 대통령을 계승하겠다고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올지, 그동안의 재'보선 결과에서 뚜렷이 봤다.
왜 이 모양이 됐을까. 혹시 출발선에서부터 잘못되지 않았나. 노 대통령 당선의 결정적 요인은 고착화된 지역 구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익을 포함한 이른바 진보 세력 덕분에 당선된 줄로, 국민 대다수가 좌선회를 희구하는 줄로 착각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미군 장갑차 희생 여중생을 위한 촛불 시위와 노사모의 맹렬한 지원에서 필요 이상의 자신감을 갖게 된지도 모를 일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기성 질서와 기득권층에 대한 생리적 반감 때문인가. 괜찮은 나라를 형편없는 나라로 오인하고, 지난날 괜찮은 나라 만들기에 피땀 흘린 사람들, 국가 원로들의 충언을 매도하거나 폄훼하고, 딴에 괜찮은 나라 만들기를 한다는 게 '서민 경제 살리기'는 안중에도 없이, 고작 '강정구 구하기'에 광분해서야 괜찮지 않은 나라로 전락 않을 도리가 없다. 통일론을 말하지만 통일은 체 게바라식 투쟁이나 '강정구 구하기'로서가 아니라 국력이 왕성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돼 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국민은 국정 쇄신과 경제 회생을 열망했지 국가 체제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라 주문하지 않았다. 이 나라는 고질화된 귀족적 탈법 행위와 부정부패만 걷어낸다면 그래도 괜찮은 나라, 좋은 나라다. 그렇지 않은가.
대졸자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넘쳐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정규 대학을 졸업한 대통령이 한둘 될까말까 할 정도로 학력 차별 안 하는 국민이 사는 나라다. 또 글자만 알면 독학으로 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있고, 합격만 하면 인격과 품성은 별로 상관없이 최상의 삶이 보장되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기회의 나라다. 그래서 움막 짓고 틀어박혀 전의를 불태운다면 무지렁이도 국가고시에 합격해서 검'판사, 고위 행정가가 될 수 있는 나라다. 또 검'판사 소질이 없어서 퇴직을 하더라도 변호사가 돼서, 반정부 시위 현장을 찾아가 거드는 척하다 보면 얼빠진 매스컴의 조명을 받아 대단한 민권 투사인 양, 참신한 인물인 양 유명인사가 되는 나라다. 그런 이력을 바탕으로 동향 인사가 드문 정당에 들어가면 희소 가치에 의해 능력보다 더 많은 대접을 받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정상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나라. 이런 기막힌 기회의 나라가 또 어디 있는가. 이 모든 것은 자유민주체제이기에 가능한 일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한 세계적인 정치컨설팅업체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한국은 '방향타 잃은 배(Rudderless Ship of state)'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하는 고도의 위험 전략(high-risk tactics)을 계속 택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 대통령이 내년 초에 뭔가를 발표하겠다고 한 것이 '고도의 위험 전략'이 아니기를 바란다. 정치적 승부수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국민은 노 대통령이 얼마 전 산행 길에서 했던 발언 중 "대통령의 임기 안에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은 참 적다"라는 부분에 대해 보다 깊이 성찰하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산행을 할 땐 내려올 준비도 갖추고 출발한다. 아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진중해야 한다.
金才烈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