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후유증 털고 새출발 하자

경주시가 방폐장 부지로 결정되었다. 정부가 방폐장 부지 선정에 나선 지 19년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치른 갈등과 국력낭비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특히 2003년의 전북 부안사태 때는 160여명이 사법 처리되고 수백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대형 국책사업이 장기 표류를 끝내고 안착하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걱정이 모두 가신 것은 아니다. 투표 후유증 때문이다. 특히 어제의 투표는 시장·군수가 삭발·단식할 정도로 과열이어서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또 하필 전북의 군산과 경북의 3개 시·군이 경쟁하는 구도여서 투표를 앞두고 지역감정에 기댄 추악한 비난전까지 난무해 걱정이 더 컸다. 크고 작은 불법 시비들도 끊이지 않아 투표일 이후를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시비와 논란을 묻어야 한다. 유치에 실패한 지역의 유치 찬성 주민이나 유치에 성공한 지역의 유치 반대 주민 모두가 어제의 투표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각 시·군에서 찬성 주민과 반대 주민이 그간의 앙금을 털고 다시 손을 잡아야 한다. 경주시와 나머지 3개 시·군 역시 갈등과 반목을 씻고 다시 손을 맞잡아야 한다. 투표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완성임을 명심해야 한다. 후유증을 털고 모두의 승리로 승화시켜 가지 않으면 안된다.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도 할 일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주 방폐장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방폐장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지원금 3천억원과 한수원 본사, 그리고 양성자 가속기 등이 주민의 안전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주시의 유치 반대 주민들까지도 결국 방폐장의 안전성을 수긍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중앙정부는 그동안 제시했던 각종 지원 약속들도 차질없이 이행해 가야 한다.

유치 경쟁에서 탈락한 나머지 3개 시·군에 대해서도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가 최대한의 배려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상실감을 메워줄 특단의 대책 외에도 지역민의 상처와 갈등과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세심한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어제의 주민투표는 국책 사업에 대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주민투표였다.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책 사업의 향방을 지역 주민이 직접 결정토록 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민주제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투표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도 적지 않았다. 그 문제점들을 보완해서, 향후 사회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합리적으로 국가와 지역 정책을 결정해 가는 절차로 정착시켜 가는 것도 우리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다.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 그리고 4개 시·군과 해당 주민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이다.

홍덕률(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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