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엔 꽃 같은 잎들이 취기를 돋운다. 대문 앞 승용차 지붕을 장식한 와인 빛깔의 활엽수 잎들을 쓰윽 쓸어내리면 서정의 물방울이 살갗에 튄다. 그 물방울이 저린 가슴과 찡한 콧등을 스쳐 상승하면 눈가에 감상의 징표가 맺힌다.
감상이 짙어지면 우울증이 되는가? 우울증을 글쓰기로 승화시킨 여성작가가 있다. 우리에겐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로 익히 알려진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 영국 남부의 한 자그마한 인적 드문 마을 로드멜에 그녀가 머물렀던 집 몽크하우스가 있다.
마당 한쪽 작품의 산실인 하얀 오두막 입구에 그녀의 일기가 씌어진 병풍이 수많은 울프 애호가들의 발길을 끈다. 이만하면 우울증도 어쩜 값진 자산이 아닐까. 20세기 초에만 해도 여성 우울증에 대한 남성 의사들의 처방은 대부분 '휴식'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몰래 뭔가를 긁적이며 스스로를 치유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글쓰기가 우울증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치유책이 될 수 있다는 반증이다. 마음이 우울할 때, 하얀 종이 위에 '나는 슬프다'라고 한번 써 보라. 슬픔이 조금은 물러날 것이다.
이번에는 '그 여자는 슬프다'라고 써 보자. 슬픔은 저만치 밀려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리두기 또는 정서의 객관화이다. 분명히 내 슬픔을 적은 것인데, 마치 몸에 착 달라붙은 젖은 옷을 벗어 걸어두고 바라보는 것 같다. 더 이상 내 슬픔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슬픔을 바라보는 것이 된다.
글쓰기가 주는 엄청난 효과이다. 누구에게나 우울은 잠복되어 있다. 다만 그것이 언제 얼마나 자주 드러나느냐가 문제이다. 글쓰기만이 해소방안은 아니겠지만, 가장 손쉬운 일기라도 한번 써보자.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휴지처럼 몸을 던져버리기엔 세상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잎이 떨어진 자리엔 다음해 다시 고운 연둣빛이 혀를 내밀겠지만, 몸이 떨어진 베란다는 다음해에도 텅 비어 있을 테니….
정화식(대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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