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죽어도 좋아

'노인의 성'에 인식 전환 필요하다

70대 할머니가 병원을 찾아왔다. 밤마다 성관계를 갖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괴롭다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밤새 몸을 흔들며 씨름을 하다보면 날이 밝아온다고 했다. 어떻게 자식이 생겼는지 의아할 정도로 소원한 결혼 생활이었고 남자가 그리운 것도 아닌데 무슨 망령이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할머니는 자식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했다. 무능한 남편 대신 생활고를 짊어지고 한평생 희생한 삶에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듯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일흔 넷의 나이에 열아홉 살 소녀를 사랑했다. 그는 그 사랑의 감정으로 '마리엔바트의 비가'라는 아름다운 시를 쓰기도 했다. 노년기에 찾아든 상사병은 천재 작가만의 특권일까. 정말 노인들에게도 사랑의 열정이 존재하는 걸까.

혈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노인이 성에 관심을 가질 경우 점잖지 않다고 비난받기 십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병원을 찾은 할머니의 고민이 컸던 것이다.

영화 '죽어도 좋아'는 실화다. 영화 감독은 서울의 한 경로잔치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커플을 만났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촬영했다. 일흔에 만난 두 사람은 달콤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서로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함께 목욕을 하며 물장난을 치다가 곧장 성관계를 가진다. 달력에 가득한 동그라미는 잠자리한 횟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종일 외출한 날은 하루해가 지겹다. 할아버지는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린다. 아프면 약을 지어주고 다리를 주물러 주고 함께 뒹굴다가 잠든다.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젠 죽어도 좋다"고.

노인에게 적당한 성생활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국내 한 연구에 의하면 남자 노인의 89.4%와 여자 노인의 30.9%가 정상적 성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노화 현상으로 성기능이 약간 감퇴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한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없다면 성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의 경우 젊은 시절에 성행위 빈도가 높고 심각한 병을 앓지 않았다면 90대까지 성행위가 가능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노인의 성은 훨씬 건강하다. 그런데도 노인의 성적 관심이나 욕망이 억압되거나 은폐되면서 노년기 우울증, 노인 매춘, 성병 증가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병원을 찾은 할머니의 경우는 외로움이 원인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전보다 훨씬 여유로워졌지만 자식들이나 친구들과의 대화가 줄어들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정욕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심리적 상태가 성관계를 갖는다는 느낌을 만들어낸 것이다. 노래와 춤 배우기, 여행가기, 자식들과 자주 통화하기 등의 활동을 권유했다. 치료를 받고 한층 표정이 밝아진 할머니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노인의 성문제를 감당하기에는 준비가 덜 되어 있고 벅찬 상태다. 손자나 돌보고 인생을 수렴할 준비나 하는 것이 노인의 미덕이라고 간주한다. 적어도 자기 부모님만은 아니기를 은근히 바란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늙지 않으려는 어리석은 몸부림보다는 노화의 올바른 개념 확립과 인식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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