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영관의 인물탐방] 이종휘 우리은행 수석부행장

"건전한 여신문화 만드는데 앞장"

인생에 지름길이 있을까. 더디고 힘든 가시밭길 대신 편하고 빠른 길이 있다면 삶은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갈래갈래 많고 많은 가운데 지금 내가 가는 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가다보면 '아니다'는 생각에 곁눈을 팔지만 과연 그 길은 쉬운 길일까.

그러나 앞서 살다 간 사람들의 말은 언제나 '지금 가는 이 길이 지름길'이라는 것이었다. 해가 되고 구름과 바람, 산이 되어 보고서야 석수장이의 처음 삶이 정답이었음을 알았다고들 한다. 외길 인생이 지름길이라는 말이었다.

우리은행 이종휘(李鍾輝·56) 수석부행장은 은행 생활 36년째다. 같이 입행한 동료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어떻게 지금까지 왔을까를 돌이켜보면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시작한 한일은행은 이제 한빛은행을 거쳐 우리은행으로 몸집을 불리고 이름을 바꿨다.

대학 졸업하던 시절 은행의 인기 순위는 앞자리가 아니었다. 고급 관료로 나가거나 유학을 떠나는 친구들이 많았다. 대기업도 선호했다. 은행은 국책은행 정도는 돼야 했다. "공부도 잘 못한 데다 당장 먹고 살아야 했기에 시중은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서울대 상대를 나온 엘리트에게서 기대한 답치곤 싱거운 고백이다.

대기업 스카우트 제의도 받아봤다. 은행보다 전망이 밝다는 게 당시 세간의 평이었다. 그러나 "직장은 내 하기 나름"이란 생각에 눌러앉았다. 은행을 평생직장으로 여긴 그에게 은행도 똑같이 화답했다. 5년 전에 이사로 승진해 작년 등기이사가 됐다.

살아 남은 비결이 없지 않을 터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선배들이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일찍 출근하고 남보다 늦게 퇴근한 것' 외에는 잘 한 게 별로 생각나지 않는단다. 요즘 그가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말을 들어 보면 답이 나온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라"고 한다. 지위가 높건 낮건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면 싸울 일도 미움을 당할 일도 없다. 그 자신 "원래 똑똑하지 않으니까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자연히 남의 말을 듣게 됐다"고 한다.

"건전한 여신문화를 만들자"는 게 수석부행장으로서 지금 그의 역할이다. 수익을 내겠다는 욕심에 행해지는 무리한 대출도 막아야 하고 행여 생길지도 모르는 잘못을 미리 차단하자고 한다. "우리은행 지분의 절반 이상은 정부가 가지고 있다. 수익이 나면 그건 고스란히 정부 돈이 되고 결국 국민들 몫이 된다"며 우리은행을 피알한다.

그에게도 '어릴 적 고생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소중한 보배'다. 고향 가창에서의 초등학교 시절 나무하러 산을 오르내린 힘겨웠던 생활이 결근 한 번 하지 않은 건강과 참을성을 안겨줬다. 사대부중·고를 나왔다. 중학생 자취시절에는 나무 때서 밥을 해 먹었다. 고등학생이 돼서는 아예 입주 과외 삼아 친구집에 들어갔다.

별다른 취미도 없다. 휴일 골프는 그에겐 업무의 연장이다. 지난 주에는 은행 산악모임 후배들과 단풍놀이 겸 인제 곰배령을 다녀왔다. 맏이인 탓에 신혼 시절에도 휴가는 제대로 한 적이 없다. 휴가 보상금은 고맙게도 동생들 등록시기에 나와 줬다. "달랑 맨몸으로 서울 와서 자식들 공부도 다 시켰고 집도 있다. 이만하면 부자 아니냐"고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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