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남정 김영태 선생

"제자들 자랑 한 번 하고 싶었습니다."

1일부터 대구문화예술회관 8~10전시실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는 남정(南亭) 김영태(65·계명대 교수) 선생은 '정년퇴임 기념 사제전'에 대한 소감으로 대뜸 이렇게 대답하며 활짝 웃었다. 자신을 위한 전시회가 아니라는 뜻. 아닌게 아니라 이번 전시회는 남정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전시회 공간은 온통 제자들 마당이다. 5년전 이미 '회갑전'을 가졌기에 내년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남정은 35년 간의 교직생활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자신들이 키워낸 제자들의 면모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의 제자들과 작품을 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이제껏 남정이 키워낸 제자들 중 전국에서, 혹은 일본이나 미국에서 교수로든 전업작가로든 도예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만 90명이 넘는다. 이들이 이번 전시회에 1~2점씩만 내놓은 작품이 100점을 훨씬 넘었다. 남정의 작품은 1980, 90년대 작품 10여 점과 2004년 이후의 최근작 10여 점에 불과하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남정의 제자들이 은사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내놓은 작품들은 말 그대로 형형색색(形形色色)이다. 질박한 흙의 물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촌스럽고 거칠고, 비뚤고 못생긴' 남정의 작품세계를 닮은 듯하면서도 그 속엔 각자의 개성이 담겨 있다. 구멍을 내고 무늬를 만들고, 색을 넣고 칸이 생기면서 새로운 작품들이 뽐을 내고 있다. 도자기(陶瓷器)가 아니라 말 그대로 도예(陶藝) 작품들이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다 남정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스승을 사사하면서 스승의 그늘을 벗기란 쉽지 않은 노릇인데 남정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왜 그럴까 싶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랬습니다. 절대로 자신의 경향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란 어느 제자의 얘기를 듣고 비로소 이해가 갔다. 남정이 '제자 자랑 한 번 하고 싶다'는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정든 교단을 떠나는 것이 섭섭하지는 않을까? 1970년 계명대 전임강사로 부임 뒤 '계명 도예 35년'을 줄곧 이끌어 온 남정이기에 그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당시 남정은 실습기자재와 도예실기실 확보를 위해 뛰어다녔다. 방학 중에는 도자기 공장을 돌아다니며 현장실습을 했다. 학생들이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도록 꼼꼼이 챙겼다. 지금도 퇴임 이후 학생들 논문지도를 걱정하고 있다는 남정은 "교육자로서의 은퇴일 뿐 작가로서의 활동은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교직생활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했던 작품 활동을 할 시간이 늘어날 테니 오히려 더 좋으리란 얘기였다.

남정은 1988년 학교에서 보직을 맡은 이후 회갑전을 겨우 열었던 2000년까지를 "완전히 공쳤다"고 표현했다. 2,3년에 한번씩은 하자던 전시회를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 그래서 은퇴 이후로는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할 것"이라고 했다.

남정은 "다시 장작가마에다 작품을 구워보고 싶다"고도 했다. 엄청난 노동 강도에 주민 신고 등의 문제 등으로 일찌감치 포기했던 장작가마 작업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의 '원시성'을 제대로 표현해내고 싶다는 것이다. '불때는 재미, 작품이 열기와 연기로 인해 시시각각 변해가는 매력'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갈수록 무늬가 퇴화하고 흙의 물성만이 남는 질그릇 태초의 모습을 보여주는 남정의 작품이 요변(窯變)을 통해 걸작으로 태어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남정은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무조건 열심히 하라"는 평소의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자연을 항상 관찰하고 어느 것 하나 흘러보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작가가 되려면 작품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가르침도 덧붙였다.

대구 도예 교육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는 남정 도예의 '원시적 야취(野趣)'와 그 제자들의 가지각색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번 전시회는 6일까지 계속 된다. 053)606-6114.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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