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방폐장 '호랑이냐 고양이냐'

경주시민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백상승 경주시장님 욕봤습니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주민투표에서 90% 가까운 찬성률을 보인 데 우선 놀랐습니다. 경주가 생긴 이래 가장 높은 투표 찬성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어떤 방폐장을 만들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정부가 준다는 3천억 원을 어떻게 쓰고, 양성자가속기와 한국수력원자력(주)을 어디에 만들지 숙의해야 할 때인 듯합니다.

방폐장은 경주와 경북이 고민하기에 따라 호랑이가 될 수도, 고양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백지란 얘기입니다.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일이니 정부에만 맡기면 '밑그림'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방폐장은 천년만년 자손에게 물려줘야 할 경주의 유산이므로 그냥 정부에만 맡겨서는 안 될 일입니다. 경주와 경북의 혼을 담고, 경주시민의 정성과 사랑을 담아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상상력을 발휘해 보시지요.

경주를 에너지클러스터로 만들려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존 월성원전에다 방폐장, 한국수력원자력(주)에다 경북 이전이 확정된 한국전력기술공사만 집결시켜도 클러스터 외양은 갖추어집니다.

그러나 뭔가 부족합니다. 서로 경쟁해서 딴 것이지만 향후 140년간 전국에서 발생하는 원전 쓰레기를 경주가 모두 받아 처리하기로 한 마당 아닙니까?

더 큰 프로젝트가 필요합니다. 경주를 원자력 또는 에너지특구로 지정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원자력연구소 유치, 에너지연구소 설립, 원자력병원 건설, 에너지 관련기업 유치, 대학 내 에너지 관련학과 확충은 또 어떻습니까?

그 그림은 정부가 그릴 수 없습니다. 경주가 그려야 합니다. 경북도가 만들어야 합니다. 대구'경북의 대학들이 그려내야 합니다.

그림만 그리면 뭐하느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타당성과 명분만 있다면 정부가 투자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지역발전의 그림은 그 지역이 그려야 한다"는 말을 노무현 대통령이 누차 언급해 온 터입니다.

양성자가속기는 경주 행정구역 내를 고집하지 마시지요. 포항에 방사광가속기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세계적인 포항공대가 있습니다. 최대의 효과를 위해 양성자가속기를 이웃인 포항에 줘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방폐장 유치 깃발을 가장 먼저 들어 경주에 자극을 준 포항은 어쩌면 경주 유치의 일등공신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굳이 경주에 건설해야 한다면 포항 쪽에 건설해 포항-경주가 첨단과학벨트로 거듭나는 단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참에 미뤄뒀던 포항 연구개발(R&D)특구 지정, 영일만 신항 확대 건설 등 동해안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R&D특구를 추진했던 대구도 방관자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대덕 하나만 R&D특구로 지정된 이후 대구는 낙담해 논의가 뚝 끊긴 반면 광주는 희망을 잃지 않고 꾸준히 논의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할 말도 많습니다. 19년간 표류해 온 방폐장을 결국 경주가 해결했습니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대 난제였던 방폐장을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낮은 경북 경주가 풀었습니다. 정치적으로 특이하고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떡'이 크기 때문에 경북이 선택한 것이라고 단순 해석하면 곤란합니다. 정부가 부안사태 때와 달리 지자체 간 유치 경쟁구도를 만들어 해결했다고 자위하는 것은 오류일 수 있습니다.

만약 군산으로 입지가 최종 결정됐다면 정부는 겉으로 내놓고 말할 수 없지만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입니다. 울진'월성'고리'영광 원전의 폐기물을 각각 140년간 군산까지 배로 옮기는 비용은 천문학적입니다.

반대로 경주로 결정나 울진'고리의 폐기물은 잠시 옮기면 되고, 영광원전 폐기물만 남해안을 거쳐 배로 옮기면 되므로 예산 절감 효과가 엄청납니다. 정부가 경주에 당장 지원하기로 한 3천억 원은 그 예산 절감 효과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금까지 공표한 지원책뿐 아니라 경주가 명실상부한 첨단 에너지, 과학도시로 발전하도록 추가 지원을 하는 데 인색해선 안 됩니다. 정부가 먼저 경주 육성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어찌 보면 경주시민에 대한 도리입니다.

경주시민의 용단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탈락한 군산'영덕'포항지역 주민 여러분께 위로 드립니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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