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항일탑

장인의 집을 턴 사위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패륜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친일파 장인의 '탁부(濁富)'를 독립 군자금으로 쓰려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구 남산동 622의1번지에서 태어나 시(詩) 서(書) 화(畵) 삼절로 불린 서예가 긍석 김진만이 그랬다. 합방을 반대하며 순국한 선산 출신 의병 대장 허왕산의 제자로 판사직을 팽개치고 대한광복회를 조직한 박상진(경주 출신) 밑에 행동대원으로 들어간 긍석은 박상진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라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대장이 어린들 어떠랴.

◇ 자신이 몸담은 항일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의 군자금이 바닥을 보이자 긍석은 행동대원들과 함께 장인 서우순의 집을 털기로 했다. 장인이 친일 행각으로 거액을 모아 집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사의 지휘는 긍석이 맡았고, 정운일 최병규 권국필 임병하 김진우 지사가 뜻을 같이했다. 김진우는 긍석의 하나뿐인 동생으로 이 일 때문에 12년 형을 치렀다. 긍석도 10년 옥살이를 했다.

◇ 긍석이 항일 투쟁을 하고, 옥살이를 하는 동안 광복단원이던 둘째 아들 영우는 독립을 외치며 31세에숨졌다. 긍석의 셋째 아들 영기 역시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사살한 하얼빈에서 사망한 사실이 현지 일본 총영사관 경찰서에 기록돼 있는 독립 관련 희생자이다.

◇ 이처럼 긍석은 자신과 동생 그리고 두 아들까지 독립에 투신해 죽는 바람에 집안이 풍비박산났고, 본관조차 모르다가 최근 분성김씨로 파악됐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12대 무역 대국으로 경제력이 커졌는데도 독립투사와 그 후손들에 대한 관심은 미미했다. 이런 때에 (사)대구'경북 항일 독립운동 기념탑 건립위원회(위원장 정관)가 망우공원에 항일탑을 세우기로 한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 긍석 일가, 박상진 총사령, 허왕산을 포함하여 1천800여 지역 항일 지사를 기릴 항일탑을 세우는 것은 흐트러진 대구'경북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개인의 영달을 버리고 나라 구하기에 충실했던 지사들을 기리는 데 대구 원화여고생이 단체로 후원한 것을 포함, 자발적 소액 후원자가 7만3천 명에 이른다. 광복을 위해 피를 뿌린 '과거의' 항일 지사들이 있었기에 새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오늘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지금이라도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최미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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