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저녁시간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쯤으로 생각된다. 시골마을의 문화혜택이라고는 흑백 텔레비전 한 두 대가 전부였다. 텔레비전이 있는 마을회관이나 여유가 있는 집에는 언제나 늦은 밤까지 시끌벅적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친 어른들과 놀거리가 없었던 아이들을 비롯해 동네 사람 모두가 저녁시간이면 하나 둘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리 높지도 않은 동네 앞산을 제대로 넘지 못한 힘겨운 전파는 배우들의 모습을 반쪽만 화면에 내놓곤 했다.

그래도 빙 둘러앉아 연속극에 넋이 나간채 키득키득 좋아라 했었다. 그나마 마을 밖 세상을 맘껏 구경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해진 저녁시간이었다. 아이들한테는 흑백화면이 동화책을 대신했다.

물려받은 교과서 외에는 이야기책을 구하기가 귀한 시절이었으니, 더욱 텔레비전 보는 일에 극성이었다. '사각 통'에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동요와 구성진 옛 노래가락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또래 도시 아이들의 세련 넘치는 율동과 함께 화면을 가득 메운 기상천외한 소식들이 저마다 신기하고 신통하기만 했다.

그 당시에도 연속극이 단연 인기였다. 꼭 다음시간이 기다려지도록 감칠나게 끝을 맺곤 해서 아쉬웠지만.... 머리를 조아린 만조백관으로부터 "천세천세천천세(千歲千歲千千歲)"의 충성과 축수(祝壽)를 받는 임금님도 사극에서 처음 만났다.

천세(千歲)는 왕조의 운명이 천년 만년 영원하라는 뜻이다. 이 의미를 나중에야 알게 될 때까지 임금님은 천년을 산다고 믿었다. 천세를 천살로 알아들었으니.... 이처럼 어린시절의 저녁시간은 설익은 지식으로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며 몽상 속에서 보냈다.

그로부터 중년에 접어든 지금의 저녁시간, 나는 대구의 세느강이라는 신천(新川)의 강변을 홀로 거닐곤 한다. 이곳은 세월의 길이만큼 뭇 사연이 스며있다. 축시(丑時)를 달리는 적막한 신천은 넉넉한 사유의 공간을 연출한다.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거창한 이치를 깨달으려 사상가의 발걸음을 하지 않아도 절로 무수한 상념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신천의 밤 경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가로등 불빛이 고즈넉한 강물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정경은 한 폭의 서양화 같다.

불의 요정이 펼친 마술인가. 수중에 그려진 황홀한 빛에 취할 때면 강 주변을 더 오래동안 서성대곤 한다. 이처럼 어둠이 내린 신천은 동화세계 같아서 좋다. 신천에 오면 수많은 군상들을 만난다.

강변 한켠에 자리를 틀고 옹기종기 축배를 드는 사람들, 멋들어지게 한 곡조 뽑는 자칭 인기가수에게 앵콜을 주문하는 구경꾼, 엄마에 이끌려 나왔다가 포장마차에 매달려 주전부리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주인 앞뒤를 이리저리 뛰면서 즐거워하는 견공(犬公) 등 모두가 신천의 일상적인 가족들이다.

풍상에 지쳐 가물거리는 보안등 밑으로 가슴을 활짝 편 채 양팔을 힘껏 휘저으며 바삐 지나가는 남녀들. TV 건강코너에서 '걷기는 군살 빼는데 아주 좋은 유산소 운동'이라는 말에 고무되어 너도나도 건강한 몸을 가꾸겠다고 저녁시간을 운동에 투자한 사람들이다.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걷기 운동으로 건강을 다스리겠다며 반사적으로 신천을 찾는 한 무리의 일원이다. 임금님처럼 천살을 살겠다던 어린시절의 망상은 깨어진채 그때 TV에 매달렸던 그 저녁시간에 신천을 거닐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는 중년. 텔레비전을 끼고 앉아 연예인들의 현란한 몸짓에 열광하는 막내 녀석의 뒷꼭지가 어딘지 눈에 익어 보인다.

남학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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